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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협력의 기반 : 국내위원회와 국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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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는 지적협력 국제협회의 본부가 있는 파리의 팔레르와 얄(Palais‐Royal)에서 1937년 7월 5일부터 9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되었다. 참가한 국내위원 은 옵저버를 포함해 43개 단체였다7). 이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는 제1차 총회가 1929 년에 개최된 후 8년만에 개최된 것이었다. 제1차에 비해 뚜렷한 특징은 첫째 국내위원회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8). 특히 비서양국가들에서의 국내위원회 급증이 두드러진다.

6) 예를 들어 일중관계사든 일한관계사든 특히 근대에 있어서는 그것을 성립시키는 국제사회의 구 조를 문제화하지 않으면 아무리 쌍방을 공평하고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결국은 내셔널 히스토 리의 축적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는 최종적으로는 ‘비교’의 문제에 귀착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서술에서의 ‘비교’의 문제에 대해서는 Benedict Anderson, The Spectre of Comparisons: Nationalism, South East Asia, and the World, London: Verso, 1998을 참 조. 또한 역사서술에서의 ‘비교’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앤더슨이 근저에서 19세기말의 필 리핀, 쿠바, 중국의 아나키즘과 반식민지운동을 ‘초기 글로벌화’(Early Globalization)의 문맥으 로 동시에 파악하고자 시도하고 있어 흥미롭다(Benedict Anderson, Under Three Flags:

Anarchism and the Anti‐Colonial Imagination, London: Verso, 2005). 그러나 이렇게 말 한다고 해서 본 원고가 지금까지 축적되어왔던 여러 가지 ‘관계사’를 모두 무효화시키자고 주장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관계사’의 함정을 의식화시켜 그것을 보완하는 것으로써 ‘트 랜스컬쳐럴 히스토리’를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7) 정식 대표의 자격으로 참가한 국내위원회는 다음과 같다. 아르헨티나, 호주, 오스트리아, 벨기에, 볼리비아, 브라질, 영국, 불가리아, 칠레, 중국, 쿠바, 체코슬로바키아, 덴마크, 이집트, 에스토니 아, 핀란드, 프랑스, 그리스, 헝가리, 인도, 이란, 이탈리아, 일본, 라트비아, 레바논,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멕시코, 네덜란드, 네덜란드령 인도,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살바도 르,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미국, 우루과이,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옵저버로 팔레스타인과 페루 가 참가. 그 외 국내위원회는 아니지만 카톨릭국제관계연구연합의 지적협력위원회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 of the Catholic Union of International Studies)와 지적협력에 관한 상설열국의회동맹위원회(Permanent Inter‐Parliamentary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가 참가단체로 이름이 올라와있다.

8) 1929년의 제1차 지적협력국내위원회 총회에 참가한 국내위원회는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26 개국이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일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네

1937년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에서의 일본과 중국 국민문화, 지역, 국제적 문맥

-그러나 제2차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의 특징은 국내위원회의 증가 혹은 지리적인 확대 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제2차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에서 ICIC, IIIC를 포함한 국제연맹에 의해서 지적협력사업의 이념과 실천에 관련된 근본적인 검토가 이루어졌기 때 문이다. 그것은 1922년에 ICIC가 출범한 이래 실천되어왔던 국제지적협력사업에 대한 근본 적인 반성과 미래의 전망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회의에는 국제지적협력의 조직, 이념, 활동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를 다룬 보고서 가 제출되었다. 예를 들어 앙리 포시용(Henri Focillon)의 ‘1931년부터 1937년의 국제연맹 에 의한 국제지적협력조직의 활동’(“Work of the International Intellectual Co‐oper-ation of the League of NCo‐oper-ations from 1931 to 1937”), 발비노 줄리아노(Balbino Giuliano)의 ‘지적협력 국내위원회의 조직화와 활동’(“The Organisation and Activities of the National Committees on Intellectual Co‐operation”), 피터 뭉크(Peter Munch)의 ‘지적협력조직의 구조’(“Structure of the Intellectual Co‐operation Organisation”), 요한 하위징하(Johan Huizinga)와 곤자크 드 레이놀즈(Gonzague de Raynold)의 ‘현대세계의 조직화에서의 지적협력의 기능’(Function of Intellectual Co‐op-eration in the Organisation of the Contemporary World)을 들 수 있다9).

그 중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레이놀즈에 의한 보고서이다. 레이놀즈는 ICIC가 창설된 이래 계속 위원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활동의 전개와 문제점에 대해서 스스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본다10). 따라서 그 의견은 ICIC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런 레이놀즈가 ICIC의 그때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며 역사적인 반성을 바탕으로 지적협력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 제시를 한 것이 이 보고서였다. 레이놀즈는 먼저 지적 협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루마니아, 세르보 크로아트 슬로벤 왕국, 스웨덴, 스위스, 우크라이 나). 제1차 회의에서 유일한 비서양국이었던 일본은 일본의 지적협력국내위원회인 ‘학예협력위 원회’의 위원장인 야마다 사부로(山田三良)를 파견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야마다 자신의 회의 보고를 참조(야마다 사부로 ‘학예협력국내위원회 대표자회의의 개황’ <국제지식> 제9권 제11호, 1929년 11월, 54‐65페이지).

9) 앙리 포시용(1881‐1943)은 프랑스의 미술사가이며 당시 ICIC의 상설미술문학위원회 위원. 발비 노 줄리아노(1879‐1958)는 이탈리아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위원장. 피터 뭉크(1870‐1948)는 당 시의 덴마크 외무장관, 덴마크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위원장. 요한 하위징하(1872‐1945)는 저명 한 유럽중세가이며 당시는 네덜란드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장. 곤자크 드 레이놀즈(1880‐1970)는 당시 ICIC위원이자 스위스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위원장이었다.

10) 1922년 창설부터 1939년에 기능이 정지되기까지 ICIC의 위원을 계속해서 맡은 것은 레이놀즈 와 길버트 머레이뿐이었다.

“우리가 지적협력에 대해 말할 때 그 공통된 이념은 정신적인 가치들, 문명들, 그리고 실제로 평화 그 자체로 성립된다. 그것은 스스로를 그 옹호자, 추진자이게 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단순한 공동(collaboration)이상의 어떤 사명을 요구하는 것이다11)

이러한 보편주의적인 지적협력 이해는 ICIC가 창설된 이래 계승되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22년에 ICIC가 설립되었을 때 그 주요 목적은 국가정부로부터 독립하여 서양문명 에 입각한 지식인에 의한 보편적인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있었다12). 그러나 레이놀즈는 이 것이 지적협력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주의를 환기하였다. 즉 지적협력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도 현대세계의 다양한 차이나 혼재성을 고려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특징은 다르지만 우호적인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서로 이해하고 정신의 구제에 종사하는 노력의 대상이 지적협력이 된다면 그 사람들은 공감적 호기심에 의해 구제되고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그들이 추상적인 개념이나 말뿐인 우상이라는 이름 하에 억지로 형식적인 일체성을 세계에 강요하려 한다면 그것은 성공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현실을 따르면서 그 다양성뿐만 아니라 이질성까지도 그대로 현실세계를 받아들인다면 성공할 것이다. 일반적인 것, 명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잘못이며 늘 잘못이었다. 그 잘못은 생명의 적이다. 그 잘못의 근저에는 다양하고 가변적인 커다란 형성력을 무시하고 인간성을 몇 가지의 지적요소로 환원하는 합리주의가 있다. 인간성과 그것을 표현하는 모든 것 ‐‐문명, 교육, 법, 정의, 자유, 평화‐‐ 는 이처럼 하나로 이어지는 개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을 현실생활에 적용하고자 할 때 이론을 수립할 수가 있을 뿐, 그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다.13)

이러한 레이놀즈의 감개는 ICIC에서의 많은 시행착오 경험 끝에 토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ICIC가 현실세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서양문명일원론을 전제로 한 일면적인 ‘보편주의’로 편향되어 온 데에 대한 반성도 포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11) League of Nations, Proceedings of the Second General Conference of National Committees on Intellectual Cooperation, Paris, July 5th‐9th, 1937, Geneva, January 1938, p.55.

12) 설립 초기의 ICIC의 ‘지적협력’의 이념과 그 변화에 대해서는 Saikawa, “From Intellectual Cooperation to International Cultural Exchange: Japan and China in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 ”를 참조

13) League of Nations, Proceedings of the Second General Conference of National Committees on Intellectual Cooperation, Paris, July 5th‐9th, 1937, p.55.

1937년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에서의 일본과 중국 국민문화, 지역, 국제적 문맥

-레이놀즈의 ‘리얼리즘’의 눈은 현실세계의 다양성으로 돌려졌으며 그 다양성은 ‘내셔널한 것’의 다양성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내가 믿는 바로는 만약 지적협력이 현대세계에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보다 내셔널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지적협력이 내셔널한 생활과 보다 직접적인 접점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국내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우리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14)

이와 같이 국내위원회는 단순히 ICIC의 각국의 국내조직이라는 역할이 아니라 ICIC에 의한 지적협력사업을 근본적으로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것은 이미 지적사업의 주도권은 ICIC에 없으며 오히려 국내위원회측에 있는 듯한 생각마 저 들게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 이러한 발언은 국내위원회 총회라는 자리를 의식해서 이루 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 보고서는 레이놀즈 에 의한 ICIC의 지적협력사업의 이념과 실천의 재검토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의 마음 속에서 ‘지적협력’의 의미, 내용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이해 해야 할 것이다.

ICIC의 지적협력사업에서 ‘내셔널한 것’의 중요성, 그리고 국내위원회의 역할 의의를 강 조한 점은 다른 보고서에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예를 들어 발비노 줄리아노 는 ‘내셔널한 것’을 국민문화와 동일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또한 다음과 같이 확신하고 있다. 즉 문화‐그것은 각각의 국민의 특징의 영향을 반드시 받는 것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질 때 반드시 큰 이념을 반영하여 그 이념의 활동영역은 보편적이며 지상의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믿는다. 한 나라의 국민문화는 진보를 위해 그 자체에 충실해야 하는 한편 마찬가지로 다른 국민문화와의 접촉과 교류를 필요로 한다. 다른 어떠한 영역보다도 문화영역에 있어서는 국민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그 에너지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그 활동에 큰 부담을 안겨주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고립될 수는 없다. 각각의 국민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다른 국민과의 협력을 통해 스스로의 문화 한계를 의식하게 되며 그러한 한계에서 벗어나는 충동과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15)

14) Ibid., p.55.

15) Ibid., p.17.

즉 여기서 제시된 지적협력의 이념은 특수한 각국 국민문화의 상호이해, 상호교류인 것 이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보편성’이란 설립 초기에 ICIC가 생각하고 있던 서양문명일원론 적인 단일한 가치를 전제로 한 ‘보편성’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상호간에 특수하고 다양한 각 국 국민문화의 총체로써의 ‘보편성’이다. 따라서 ICIC의 지적협력사업이 ‘보편성’을 표방한 다 하더라도 그 주요임무는 가능한 한 많은 특수한 국민문화를 다루고 상호교류를 촉진하 는 국제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라 간주된 것이다16). 그렇기 때문에 국내위원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강조되어 그 수적인 증가와 지리적 확대가 ICIC의 ‘보편성’의 담보가 된 것이었 다17). 그러나 제2차 지적협력 국내위원회 총회에서 지적협력을 ICIC와 국내위원회, ‘보편 성’과 특수한 국민문화의 두 가지 차원으로 이해하는 시각에 대해 유보를 요구하는 의견이 제출되었다. 그것이 지적협력에서의 ‘지역’의 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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