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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당초 한국측 요구액은 50억엔 내지 180억엔

第7章   政権交代と情報公開   文書公開の意味と権力、民主化という側面から考察

2. 회담 당초 한국측 요구액은 50억엔 내지 180억엔

1952년 2월 20일부터 4월 1일까지 8번에 걸쳐 제1차 한일회담 청구권 분과 위원회가 열렸으나, “金溶植의 회고에 의하면 한국 측은 이 교섭에서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오오타 오사무 저 󰡔일한 교섭–청구권 문제 의 연구󰡕 88쪽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구체적 숫자의 제시없이, 법 이론만을 가지고 의논이 계속 열을 띄었다고 하는 것도 현실적이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과연 일본 측 문서 72 외무성 북동 아시아과 제작 문서 1958년10월16일 「일한회담의 문제점」에는 한국측 이 요구한 금액이 노출되고 있었습니다. 어쩌서 이렇듯 뻔한 거짓말을 김용식이가 했는가에 대해서는 물론 불명합니다. 외교 교섭이란 것은 그냥 믿고 받아 드리면 안된다는 정도일까요? 원문을 그냥 인용하겠습니

다.

1쪽 한국의 대일 재산 청구권에 대해서

1. 재산 청구권(2.문화재와 3.선박은 생략)

(a) 금차의 일한 전면 회담에 있어서는(1958년의 제차 회담), 한국측의 사정에 의해서 위원회가 한번도 개최 안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측의 요구 내용도 그 금액도 알 수 없다.

(b) 과거의 제1차 제3차 회담에 있어서 한국측이 제출한 요구 항목에 대해, 우리측이 추정에 의해 요구액을 시산한 바에 의하면 일단 180억엔(아주 드문 일본 측의 계산)이라는 숫자가 나와 있으나, 본래 이것은 다만 개산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측의 요구 항목은, 한국측이 1952년2월 우리측에 제시한 한일간 재산 및 청구 권 협정 요강안에 제시되고 있으나, 요약하면

  (1) 종전시에 조선 총독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서 갖고 있던 채권(이들 채권은 한국 정부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원칙에 의거한 것으로 생각된다. 약20억엔)

(2) 한국에 본점 또는 주된 사무소를 갖고 있던 일본 법인의 재일 재산(예컨데 조선 은행이 소유하고 있던 등록 국채 50억엔 등이 포함된다.)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재한 재산의 몰수에 의해 이들 법인의 주주권이, 한국 정부에 이전해서 이들 법인이 한국 법인이 되었다는 근거에 서는 것으로 생각됨. 약90억엔)

(3) 한국 국민이 보유하는 일본의 국채, 공채, 주식, 일본 은행권의 결제(약50억엔)(국채, 공채의 대부분은 재한 일본 재산을 몰수한 결과로서 한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은행권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각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한 상환에 응해야 한다는 의논도 있다),

(4) 기타 한국에서 운반해 간 지금, 지은의 반환 및 종전후 조선 총독부 특별 회계에 의해 대일 이송된 자금의 반환(약10억엔)이 주로 된다.

(c) 위의 외, 한국측이 정식제시를 유보하고 있는 청구 항목(예컨데 강제 철거, 강제 공출 및 疎開에 의한 피해라 든지 무역 보상금이라고 하는 항목들이 올려져 있으나, 한국 측으로부터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내용은 불 명)이 있고, 위의 개산 금액은 한국측 계산에 의하면 150억엔이다.

이하 먹칠된 부분의 뒤, 다음쪽은 불개시.

그러나 얼마 일본 측이 추정해서 요구액을 시산했다 하더라도 일단은 180억엔, 또 한국 측으로부터 들었 다고 하는 개산 금액 150억엔이라는 금액과 그 이전에 한국측 내부에서 검토되어 있었던 금액 95억8,031만 6,527불 = 약407억1,634만5,000엔이나 94억4,503만万618불 = 402억6,215만3,800엔과 비교하면, 한국측 이 현실로 요구한 금액은 대폭 후퇴하고 있었던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 태도는 강경하며, 3월6일의 제5차 회의에서는 ‘재한 일본인 사유 재산 청구권’ 을 강하게 주장해서, 4월25일에 1차 회담은 결렬해 버립니다.

미국의 개입으로 재개된 제2차 한일회담에서도 구체적 금액의 명시는 없었으나, 1953년 6월 15일에 열린 청구권위원회 제3차회의에서 “각항목별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실체가 명백히 되는대로 반환 지불할 수 있는 것은 즉시 실행할 것으로 합의를 보았음”이라고 있습니다.

한국측 문서번호92의 41‐43페이지. 

 기 1. 한국 국보(중략)

    2. 태평양전쟁중 피동원자의 미청산 계정에 관하여는 전체적 숫자는 아직 계출되지 않았으나, 5월말일 현재로 공탁된 액수는 좌기와 여히 또 1인에 대한 계산의 기준은 일본인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부양 수당에 관하여 는 일본에 거주하는 가족에 한하여만 지불할 것이라 하였음.

(1) 육군관계 해당자/복원자 40,415명, 전사자4,087 공탁금 24,770,720엔(일화)        (2) 해군 관계 해당자 49,252건, 공탁금 53,402,000엔(일화)

    3.유골

(1) 해군관계 보관분 2,672주, 기환송된 것, 전단 2,677주, 후단 7,422주        (2) 육군관계 보관분 1,448주, 

4. 한국인 소유 유가 증권(주식 국채)에 관해서는 상호 자료를 대조하여 숫자적으로 실체를 밝혀서, 이에 대해 서도 담당 사무자 회합을 구성하기로 했음.

이렇게 확실한 숫자가 나와 양쪽이 합의까지 한 예는 아주 드뭅니다. 그러나 이 제2차 한일회담 청구권 위원회 제1‐3차회의의 회의록(1953.5.11~6.15)은 일본 측이 공개한 6만페이지 안에 포함 안 되어 있습니다.

부분 개시도 아니고 불개시도 아니며 완전히 말소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도 공개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구보타 망언을 뒷받침하는 면밀한 계산에 의거한 일본 측의 요구

  그러나 1953년10월15일에 열린 제3차 한일회담 제2차 청구권 분과 위원회에서 있었던 소위 구보타 망 언, 즉 “한국이 배상을 요구한다면 일본은 그 동안 한인에게 준 은혜, 즉 치산, 치수, 전기, 철도, 항만시설에 대해서까지 그 반환을 요구하겠다. 일본은 매년 2천만엔 이상의 보조를 했다. 일본이 진출 안했으면 러시아, 아니면 중국에 점령되어 현재의 북한처럼, 더욱 비참했을 것이다.”는 말 때문에 완전 결렬, 5년간의 공백 기간에 들어 간 것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이 구보타 망언에 시기를 맞추어서인지 1953년 11월에 발행된 외무성 정보 문화국이 발행한 잡지 󰡔세계 의 움직임󰡕 특집호66이 제 6차 개시문서1163의 1234 「국회에 있어서의 재외 재산 보상에 관한 정부 답변 등」 54페이지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일본이 한국에서 받아야 할 금액, 일본이 한국에 지불해야 할 금액, 그 차인 수취액’ 금액들이 모두 먹칠 되어 있고, ‘왼쪽에 쓴 숫자의 일본 측 액은 어떠한 근거에 따랐는가’라는 질문이 있는 것부터 보아서, 이 잡지만 입수할 수 있으면, 당시 일본 측이 계산하던 숫자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국립 국회 도서관에 가서, 이 잡지를 찾아보았는데, 이 호만 깨끗이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전국에 있는 모든 국립 대학교의 도서관들에는 재고가 있는지, 국회 도서관 관계자에게 인터넷 으로 검색을 부탁했는데, 역시 이 호만 다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외무성이 거기까지 손을 써서 회수 했을까 요? 저에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철저히 숨기고 온 외무성이 발행한 이 책자를, 우리 단체의 한 회원인 고바야시씨라는 분이 찾아 주었습니다. 국회 도서관에서 찾아도 없었고 또 전국의 국립 도서관에 서도 모습을 치웠던 그 책을 그 분이 어떻게 찾았는가 하면, 여기저기 찾아보더니 외무성의 외교 자교관에는

없었지만, 외무성 건물 안에 있는 도서관 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바야시씨가 “그 책을 보여 달라” 고 외무성에 요구했더니, “이것은 내부 자료이니 외부에게 넘겨 줄 수 없다”고 거절당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국회의원을 통하여, “이렇게 오래된 정보마저 숨기는 것은 정보 공개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 민주 국가인 일본에서 이런 것을 숨기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고 싸운 끝에 얻어 내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이렇 게 써 있었습니다.

일본이 한국에서 받아야 할 금액 약140억엔 일본이 한국에 지불해야 할 금액 약120억엔 차인 수취액 약 20억엔

그 당시의 환산율이 미국돈 1달러가 일본돈 15엔에 해당했다는 숫자로 계산해 보면 각자 약 9억3천만달 러, 8억달러, 1억3천만달러로 되겠습니다. 즉 식민지 지배 미청산으로 남았던 빚보다 일본이 한반도에 남기 고 온 돈이 더 많기 때문에 한국이 오히려 배상해야 한다는 계산 내용입니다. “일본 측 금액은 어떠한 근거에 의거한 것인가?”라는 상정 질문에 대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받아야 할 액의 산정에 있어서는 외무성이 당시 입수할 수 있는 자료들, 예컨대 조선 인양 동포 옹호회의 ‘재조선 일본인 개인 재산액 조사’, 조선으로부터의 인양자들 보고서를 될수록 폭넓게 참조해서, 굳이 숫자로 나타낸다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는 준비를 위한 숫자를 나타낸 것이며, 개개의 자료들로부터 쌓아 올려 추계한 것은 아니다.” 

확실하지 않다고 변명만 하고 있는 이 답변부터는 어떻게 계산했는지 그 근거를 전혀 찾아 낼 수가 없습니 다. 같은 책 29페이지에서는 그 주장이 더 강력합니다. “한국에 두고 온 일본 국민들의 사유 재산은 종전시 의 가격으로서 약120억 내지 140억엔에 달하며, 그에 대해서 한국이 청구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한국에 있어서의 전재산 가치의 85%에 상당한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이다. 이와 비교해 한국측은 일본에 두고 있는 재산 약90억부터 120억엔에 청구권도 있다고 한다. 그것들을 상쇄하자는 제안이 있으나 당치도 않은 이야기다. 이것은 실질상 20부터 40억엔을 한국을 위해 포기하는 셈이 된다.”

6.25동란의 불이 꺼져 몇달도 안되어 폭탄 냄새까지 아직 남아 있는 한국에 대해 막대한 돈을 요구한다 니, 이것이 얼마나 부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고 여기서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통하지 않은 것은 아예 일본 측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공공연하게 한국에 요구하지도 못했고, 지금에 와서도 감출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자에 대해서는 아직 그 계속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위의 방법으로 이 숫자를 입수하고 있었 지만도, 다시 한 번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집호6’이라는 숫자를 처음에 입력 못했기 때문에 안 나왔던 것 같았습니다. 다시 이 숫자를 입력해 보더니 지방에 있는 헌 책방에서 500 엔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주문하자 1주일 후에는 도착했습니다. 여기에 그 실물이 있습니다. 거기에 또 하나 의 일화까지 나왔습니다. 이 책은 벌써 제4차 개시 때, 이미 공개되어 있었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한 내 헛수고는 무엇 때문이었는가? 또 그러면 4차에서 공개되어 있는 숫자를, 왜 6차에서는 먹칠했는가? 외무성 의 쓸 때 없는 짓에 더 화가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