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은 전승국에 의한 점령, 전범 재판, 피해국과 국민에 대한 전 쟁 배상 등이 있다. 전후 실시 과정을 보면, 일본에 대한 점령은 국가 전체가 전쟁에 대해 책임지는 일종의 표현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군국주의자에 대한 재판은 비록 총체적이지 못했지만 결국 어느 정도의 역할은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본의 전쟁 배상 문제는 실
24) 步平, 「일본 전쟁 책임 인식의 사회 사상 층위 연구」, 홍콩항일수난동포기념연합회에서 펴낸
『중일 전쟁이 남긴 문제 연구 논집』, 2004년, 99p 참고.
천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여전히 큰 오해가 남아 있으며, 가장 큰 문제는 전쟁 배상의 책 임 주체에 대한 인식이다.
과거의 국제법 실시 과정을 보면, 전쟁 배상의 책임 주체는 주로 국가였다. 하지만 국가 란 추상 명사가 아니며 모든 국가는 결국 그 안에서 생활하는 국민으로 구성되므로, 한 국 가가 다른 국가나 국민에게 배상 책임을 질 때, 실질적인 배상 책임은 배상하는 국가의 모 든 국민들에게도 돌아가는 셈이다. 근대 이후 전쟁 배상은 모두 예외없이 그러했다. 다시 말해, 전쟁 배상의 책임자는 실질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전범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전쟁 발 생에는 책임지지 않지만 전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침략국의 일반 민중도 포 함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전범은 법률의 제재를 받고 오랫동안 감금되거 나 심지어 일부는 극형을 받는다. 따라서 그들은 비록 전쟁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집단이 지만 실질적으로 전쟁 배상 책임의 이행자가 되기는 오히려 힘들고, 전쟁의 일반적 책임자 가 자연스럽게 전쟁 배상 책임의 주체가 되었다.
2차대전 이후 전쟁 배상 과정 보면, 특히 독일의 경우 전국민이 배상의 책임을 함께 지 는 원칙을 구현하였다. 여기서 전국민이라는 개념에 전쟁 과정에서 나치 만행을 저지른 전 범도 포함되지만 그 전쟁의 와중에서 반전을 외쳤던 독일인도 포함되었으며, 전쟁을 직접 겪은 독일 국민도 포함되지만 그 전쟁을 겪은 적이 없는 독일 국민의 후손도 포함되었다.
도이치 민족은 이토록 넓고 관대한 흉금을 가지고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2차대전 당시 피해자에게 배상하고 있으며, 지금의 배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전쟁과는 직접적인 관 계가 없는 독일의 후예가 창출한 자산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독일은 전체 민족의 관점에 서 전쟁에 대해 배상 책임을 졌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배상 과정은 우리에게 전쟁 배상 책임 인식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는 동시에, 일본의 배상 책임을 우리가 평가하고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 체계가 되고 있다.
일본의 전쟁 배상 책임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오랫 동안 우리의 인식에 오류가 있었다. 이 오류는 주로 침략 전쟁에 대해 주된 책임이 없는 국민에 게 전쟁 배상의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사고로 표출되었다. 이는 근대 중국이 열강에 여러 차례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했던 경험과 결국 부담이 전부 수많은 인민들에게 돌 아갔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일본의 전쟁 배상 문제에까지 적용시킨 나머지, 일본 인민에게는 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일찍
이 1960년대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오카자키 가헤이타(岡崎嘉平太) 중일 각서
무역처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도 배상을 요구할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일본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배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일본 인민도 중국인처럼 일본 군
벌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에 군벌이 있다면 당연히 배상을 요구하겠지만, 오 늘날 일본에는 군벌이 없으므로 배상을 요구한다면 똑같은 피해자인 일본 인민들에게 부담 시키는 꼴인데, 우리나라의 사고 체계에서 이는 불가능합니다.”25)고 말했다.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벌만이 전쟁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관점이었다.
이 관점은 중국의 특수한 시대의 특수한 결과물로서, 당연히 지금은 다시 고민해볼 필 요가 있다.
사실상 전쟁을 일으킨 자나 전범은 전쟁에 형사 책임을 져야할 뿐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전쟁 배상의 책임도 져야 한다. 그들이 일반 국민과 다른 점은 형사 처 벌을 받으면서 동시에 전쟁 배상의 책임을 진다는 것 뿐이다. 일반 민중의 경우 전쟁을 일 으킨 책임은 없지만 즉 전쟁에 대한 법률적 책임은 지지 않지만 전쟁에 참여한 책임은 있 기에, 전쟁 기계를 구성하는 일부였으므로 패전의 결과 즉 전쟁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인 형사 및 민사 사건에서 그 합리성을 찾아볼 수 있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 어떤 형사 사건에 법적 책임이 있다면 그 본인이 당연히 법률의 제재를 받는다. 형사 책임 에 민사 책임이 부가될 경우 경제적 배상을 해야 하고, 실질적으로 그의 가족이 부담한다.
그의 가족이 직접적인 형사 책임자가 아니라고 해서 배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 민중의 전쟁 배상 책임은 도의적 관점에서도 합리적이다. 중일 간의 전쟁은 두 민 족 사이의 전쟁으로서, 침략에 저항한 중국측으로서는 저항 주체 내부에 비록 당파, 단체, 계급, 계층의 구분이 있다고 하나 전쟁의 과정에서 그가 노동자 계급으로서 저항했는지 아 니면 농민 계급으로서 저항했는지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말해, 중화민족의 전 체가 침략에 저항하여 민족의 생존을 위해 싸운 전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전쟁을 일 으킨 일본에 대해서도 어느 특정 계급 혼자 일으킨 전쟁이라고 할 수 없으며, 파고들어가 면 일본 민족이 참여한 민족 전체의 침략 전쟁인 것이다. 전쟁의 과정에서 일본 병사의 행 위는 물론 우리들이 ‘통치자’라고 부르는 의지에 의해 집행된 부분도 있지만, 통치자와 명 령과 그들의 실제 행위 사이에는 상당히 큰 중간 지대가 있었고, 종종 바로 이 중간지대가 있기에 이들 병사의 행위가 오히려 전쟁의 잔혹성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사실 광범위 한 중국 지역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 사건의 상당 부분은 일본 ‘통치자’가 직접 하달한 명령 이 아니라 일본 병사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일본 민중이 집단적으로 전쟁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또 하나의 도의적인 근거는 다음 과 같다.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의 책임은 피라미드 형태의 사다리꼴 구조 속에서 최상 25)『周恩來와 일본 친구들』, 中央文獻出版社, 1992년, 140p.
층인 일본 천황에 있다. 즉 최대의 전범은 일본 천황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점령자인 미국 이 일본 국가 운영의 편의를 위해 천황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측에서 이에 책임져야 한다. 피라미드의 중간층에는 일본 군부와 전체 문관 시스템의 핵심 군국주의자 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전후 초기 재판 과정에서 처벌받았지만, 일본 전체의 방대한 전쟁 기계에 비해 처리된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극동국제재판소든 국민정부가 중 국에서 진행한 재판이든 아니면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이후의 재판이든 모두 지나치게 관대 한 측면이 있었다. 이렇게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에 대한 전체적인 책임 추궁 상황은 이 전쟁 자체의 잔혹성과 대비된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 일본 민중이 전쟁 배상의 형식으 로라도 전쟁에 책임지지 않는다면, 한 민족으로서 일본은 너무나 무거운 정신적 부담때문 에 영원히 앞으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할 수도 있다.
일본 민족 전체가 전쟁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즉 전쟁을 겪지 않은 신세대 일본 민중도 독일 국민처럼 용감하게 역사를 직시하고 큰 도 덕적 용기로 배상의 책임을 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2005년 1월 27일은 소련 홍군이 아우슈 비츠 포로 수용소를 해방시킨지 60주년되는 날로서, 독일 슈뢰더 총리는 25일 베를린 집회 에서 역사의 교훈을 잊지말자고 다시금 강조하였다. 그는 아우슈비츠는 독일과 유럽의 역 사상 ‘가장 참담한 페이지’이며, 이 역사의 부담이 비록 무겁다고 해도 독일이 엄숙하게 져 야 할 책임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나치 이데올로기와 그 폭력은 오로지 인위적 재난이었 으며, 오늘을 살고 있는 대다수 독일인이 나치의 학살과는 무관하다해도, “나찌 시대의 역 사와 폭력을 기억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책무이며, 이 책임은 나찌의 폭력에 희생당한 이들과 생존자와 그 가족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하였 다. 독일 전쟁 책임에 대한 독일 총리의 이해와 발언은 일본이 진지하게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신세대 일본 국민이 과거 침략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 서 이에 그들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이치는 자명하다. 현재 일본 국 민이 누리고 있는 근대화의 열매는, 그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근대 이후 일본의 대외 침략 확장 특히 대중국 침략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상당하다는 점 이다. 일본 근대는 침략과 확장을 통해서 비로소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완료하고 근대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일본 민중은 근대화의 성과를 향유하는 동시에 당연히 이러한 성과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보고 구세대의 근대화를 위한 원시적 축적에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 전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본 민중에게 전쟁 배상의 책임을 지라면, 그 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일부 일본학자는 전쟁사관에서는 올바른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