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등성이나 고개를 넘어 자유자재로 움직여 불어오는 ‘바람’을 바라보 면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 즉 ‘바람이 사람이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가이(甲斐)지방의 산중에 두고 온 사람을 생각하며 甲斐が嶺を嶺越し山越し吹く風を 人にもがもやことづてやらむ
가이(甲斐) 고개를 넘어 부는 바람이 사람이라면 내 소식을 부탁하고 싶구나
(古今 卷二十 1098)
라고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아 소식을 전했으면 하는 마음을 읊은 노래가 있다.
21) 제목을 내걸고 노래를 읊는 「題詠歌」는 千載, 新古今 시대에 이르러 유행한다.
일본고전시가 속에 나타난 「바람」의 이미지 ··· 南 二 淑…139
『만요슈(萬葉集)』의 가집에는 ‘내가 바람이라면’ 하는 가정 하에 연인을 자 주 만날 수 없는 고통을,
息の緒に 我は思へど 人目多みこそ 吹く風に あらばしばしば 逢ふべきものを
살아있는 한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람들 눈이 많아 만날 수 없다 바람이라면 자주 당신 을 만날 수 있을 텐데 (万葉 卷十一 2359) 라고 호소한 노래도 있다. 생생한 감각적 표현으로 관능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다음의 노래도 있다.
妹に恋ひ寝ねぬあしたに吹く風は 妹に触れば我にも触れこそ
그 처자 생각에 잠 못 이룬 새벽에 부는 바람이여 처자에게 닿았다면 내게도 닿아다오 (万葉 卷十二 2858) 이와 같이 험한 곳이나 장애가 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침없이 자유자 재로 다닐 수 있는 ‘바람’의 속성 때문인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교신하는 전언이나 편지 혹은 소문을 전하는 매개자로 다수 읊어지고 있다. 이하 ‘바람’
이 소식을 전해준다는 발상에서 읊은 노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目に見えぬ風に心をたぐへつつやらば霞のわかれこそせめ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마음을 실어 보낸다면 당신은 이런 마음을 받아 주실는지 (後撰 卷十三 930) 雲井地のはるけきほどの空事はいかなる風の吹きてつげけん
구름 저편의 헛소리를 도대체 어떤 바람이 그쪽으로 가 전했을까요
(後撰 卷十六 1141) いづくより吹きくる風の散らしけむ 誰もしのぶの森の言の葉
어디에서 발생한 바람 때문에 소문이 세상에 퍼졌을까요 비밀로 한 둘만의 사이였는데 (千載 卷十三 827) 別れ路は雲居のよそになりぬともそなたの風のたよりすぐすな
당신과 헤어져 떠나는 길은 머나먼 저쪽일지라도 바람이 전하는 편지를 잊지 말아주었 으면 (新古今 卷十 894) 그런가 하면 배의 부두 접근을 방해하고, 아름다운 꽃이나 단풍을 지게하며 초목을 시들게 하는 방해물 역할을 하는 ‘바람’을 읊은 노래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水霧(みなぎ)らふ小島に風を疾み 舟寄せかかねつこころは思へど
물안개 심한 작은 섬에 바람이 심하여 배가 접근하기 어렵구나 마음 같아서는 그렇지 않지만 (万葉 卷七 1401)
花散らす風の宿りは誰かしる我にをしへよ行きてうらみむ
꽃을 지게 하는 바람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 내게 말해다오. 찾아가 원성을 높이리라 (古今 卷二 76) 吹く風にあつらへつくるものならばこの一本は避きよと言はまし
부는 바람에 내 바라는 생각을 전할 수 있다면 이 한 그루만 피해 달라 할 텐데 (古今 卷二 99) 吹くからに 秋の草木のしをるればむべ山風をあらしといふらむ
살짝 부는 바람에 가을 초목 시들어 그래서 산바람을 아라시(嵐)라 하더라22)
(古今 卷五 249) 戀しくば見てもしのばむ紅葉ばを吹きな散らしそ山おろしの風
임 그리워지면 그냥 지켜보리 단풍을 흩트리지 말아다오 산바람이여
(古今 卷五 286) 千代までも心して吹け紅葉を神もをしほの山 おろしの風 23)
영원히 마음 쓰며 불어다오 신께서도 단풍 아낌을 아시오 산바람이여
(新古今 卷十九 1899) 뿐만 아니라, 배신․중상․질투 등을 불러일으키는 방해물이란 이미지를 ‘바 람’에 중첩시키는 경우도 있다.
須磨24)のあまの鹽やくけぶり風をいたみ思はぬ方にたなびきにけり
바람이 거세어 스마 어부의 소금 굽는 연기가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구나 (古今 卷十四 708) 위 노래에서는 자신의 연인을 빼앗아 간 다른 남자를 ‘바람’에 비유하고 있 다.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게 된 것을 연기에 빗대어 여자의 배신을 ‘연기가 생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며 상대 여인 의 배신을 원망하는 마음을 읊고 있다.
다음 두 노래도 유사한 비유법을 사용하고 있어,『고킨슈』의 위 노래의 영 향을 받았으리라 추측된다.
22) 이 시가는 산바람을 노래한 것이다. 바람이 내리불면 가을의 초목은 시들어 버리므로 과연 산 에서 부는 바람은 아라시라고 山아래 風을 써서 표기하는구나 하는 의미를 가진 노래이다. 언 어유희와 같은 느낌의 노래인데 가을에 거칠고 험하게 부는 바람이라는 의미로 가을 정취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노래이다.
23) 오시오야마(小鹽山)의 아름다운 단풍을 지게 하는 바람에게 이 산의 단풍은 신도 아까워하고 있으니 천대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불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단풍이 진다는 것은 비 애이고 슬픔이며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망가뜨리고 해치는 가을바람을 원망하는 노 래들이 상당수 있음을 알 수 있다.
24) 현재 고베시(神戶市)의 스마(須磨)구의 해안일대를 가리킴
일본고전시가 속에 나타난 「바람」의 이미지 ··· 南 二 淑…141
風を疾みくゆる煙の立ち出でても なほ懲りずまの浦ぞ恋しき
부모의 질책이 심해 내색 못하고 있지만 그리운 마음만 더해진다
(後撰 卷十二 865) 風を疾み思はぬ方に泊りする 海人の小舟もかくやわぶらむ
바람이 심해 생각도 못한 곳에 정박하게 된 어부의 배도 나처럼 탄식하고 있을 것이다 (본처의 질투가 심해 사랑스런 이가 있는 곳에 갈 수 없는 것이 원통하기만 하다)
(拾遺 卷十五 963) 전자의 노래는 ‘심하게 질책하는 부모’를 ‘바람’에 비유하고 있으며, 후자의 노래는 ‘질투심으로 분개해 있는 본처의 방해 행위’를 ‘바람’에 빗대어 애면글 면 애만 태우는 연심을 능숙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