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고전시가 속에 나타난 「바람」의 이미지 ··· 南 二 淑…131
다음 노래는 서문을 참고로 하면 병상에 누워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을 보면서 읊은 노래이다. 가을 낙엽이 지는 것을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것에 빗대어 바람이 부는 대로 지는 단풍보다 자신의 운명은 더욱 덧없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다음의 고킨 286의 노래도 자신의 불안한 운명을 바람에 지는 낙엽에 빗대어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紅葉ばを風にまかせて見るよりもはかなものは命なりけり
바람이 부는 대로 지는 단풍을 보는 것보다 더욱 덧없는 것은 인생일 것이다
(古今 卷十六 859) 秋風にあへず散りぬるもみぢ葉のゆくへさだめぬ我ぞかなしき
가을바람에 못 견디고 져버린 단풍잎처럼 갈 곳 정하지 못한 이 내 몸 서글퍼라 (古今 卷五 286) 이와 같이 가을바람은 우리의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기도 하고 초목을 시 들게 하기도 하며 사람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 역동적 존재로 노래되어지고 있다. 모든 생명이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순환하고 그러한 자연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고 믿어서일까. 옛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은 자연 안 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과정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융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고대의 가요,『樂府詩集』卷46 「吳聲歌曲」에 실린 夜あひ思ふ風の窓の簾を吹きて動かせばこれあなたの來たるかと思ふ
그리워 서로 잠 못 이루는 밤. 바람이 창가의 발을 움직이기 때문에 사랑스런 그대가 온게 아닌가 하네
라고 노래한 중국 노래의 영향을 받고 있는 노래라고 지적되고 있다.13) 이와 같은 발상 하에 바람을 노래한 내용은 『伊勢物語』64단의 노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4)
吹く風にわが身をなさば玉簾隙求めつつ入るべきものを
날 바람으로 바꿀 수 있다면 당신 방의 발 틈새로 들어가 당신을 볼 수 있을 텐데
‘서신만으로 쉽게 정을 통할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원망스런 마음과 내가 바 람이 될 수 있다면 자유로이 당신과 만날 수 있을 텐데’ 라고 하는 간절한 마 음을 담고 있다. 이 노래 역시 멀리 타향에 있어 만날 수 없는 아내의 심경을 노래한 漢代의 『古詩十九首』속의 ‘願はくは西南の風となりはるかに赴きて君 が懷に入らむ(바라건대 서남풍이 되어 먼 곳에 있는 당신을 향해 그대 품으로 안기리)’(文選 卷23) 노래와 닮아 있다는 주석서도 있는데 15) 발상 그 자체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살랑거리는 가을바람을 소재로 해 이성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한 경우는 중국시의 영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만요슈(萬葉集)』의 ‘가을바람’의 용례를 조사해 보면 칠석을 중심으로 부 른 ‘칠석’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상세계의 로맨스, 견우와 직녀가 까치가 놓아준 오작교를 이용해 은하수를 건너 일 년에 한 번 만나 애틋한 사 랑을 나누고 다시 헤어진다고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충분히 고대인들 의 주목을 끌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칠석 무렵의 차분한 초가을의 풍경 또한 가인들을 여름의 지긋지긋한 무더위에서 해방시키고 새로운 서정의 세계로 유혹했을 것이다.
『만요슈(萬葉集』의 卷10의 「秋の雜歌」를 보면 칠월 칠일 칠석날 밤에 직녀성이 은하수를 건너 견우성을 만난다고 하는 중국의 전설 및 이를 토대로 한 노래가 배열되어 있다. 16) 이 중 바람과 관계있는 몇 수만을 소개하면 다
13) 新編日本古典文學全集, 『萬葉集1』, 小學館, 1994, p.269 14) 中野幸一譯注, 『伊勢物語』, 旺文社, 1990, p.112 15) 渡辺秀夫,『詩歌の森』, 大修館書店, 1995, p.161
일본고전시가 속에 나타난 「바람」의 이미지 ··· 南 二 淑…133
음과 같다.
칠석날 밤에 부는 바람은 견우와 직녀의 회합을 알리는 심부름꾼이고 그 바 람이 상봉의 기쁨과 이별의 한을 운반해온다고 믿고 있다.
天の川 水陰草の 秋風に なびかふ見れば 時は來にけり
은하수의 수초가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니 때는 온 것 같다 (万葉 卷十 2013) ま日長く 戀ふる心ゆ 秋風に 妹が音聞こゆ 紐解き行かな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있는데 가을바람에 님의 기척이 느껴진다 허리띠를 풀고 만나러 가자 (万葉 卷十 2016) 彦星と 織女と今夜 逢はむ 天の川門に 波立つなゆめ
견우와 직녀가 오늘밤 만나는 아마노가와 강 입구 파도여 제발 거칠게 일지 말아라 (万葉 卷十 2040) 秋 風の 吹き漂は す 白雲は 織 女の 天つ領巾か も
가을바람이 불어 나부끼는 흰구름은 직녀가 지닌 베일일지도... (万葉 卷十 2041)
가을바람은 이와는 다른 정취도 자아내고 있다.
秋風にあふたのみこそかなしけれわが身むなしくなりぬとおもへば
가을바람을 만난 벼는 안쓰럽다 바람 때문에 상해 열매 맺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古今 卷十五 822)
표면적인 의미는 위에서 해석한 대로이지만 이 노래에 숨은 뜻은 ‘의지하고 있는 당신에게 배신당한 일이야말로 슬픈 일이다. 가을바람을 맞은 벼의 열매 가 텅 빈 것처럼 내 신세도 덧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로 주석서를 참고하 면 이런 식으로 많이 해석하고 있다.17)
가을바람은 다음의 노래에서와 같이 너무 춥게 느껴진다. 그런 쌀쌀한 계절 이기에 행여 무정한 임이라도 마음 풀릴까 해서 기다리는 게 당시의 여자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18)
16) 권8 ․ 권9 등 다른 권에 배열되어 있어 132수의 노래가 보이고 있다. 칠석을 둘러싼 전설 및 습속은 일찍이 일본에 전해져 귀족의 저택에서 詩歌의 宴會가 개최되고 텐표 元年(724년)에는 朝廷의 연중행사로 자리 잡는다. 아래 소개하는 노래는 가키노 히토마로의 작품인데 윤영수에 의하면 히토마로 칠석가의 경우 중국의 전설 한시와는 달리 일본적 전통과 생활·신화적 배경 하에 제작되고 천상의 로맨스가 아니라 지상적인 사랑이야기로 변용시켰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윤영수, 「人麻呂歌集 七夕歌의 文學史的 意義」,『동아시아고대학』, 제26집, 동아시아고대학 회, p.366 참조
17) 新編日本古典文學全集, 『古今和歌集』, 小學館, 1994 등 많은 주석서가 같은 뜻으로 해석
18) 실제로는 무정한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의 입장이 되어 남성인 素性(소세이) 스님이 부른 노래임
風の身に寒ければ つれ もなき人をぞ頼むくるる夜ごとに
가을바람이 춥게 느껴져 무정한 임을 기다리네 어두운 밤마다 (古今 卷十二 555)
다음의 노래들을 보면 당시의 연인들은 그다지 성실하지 못했던 것 같다.
秋風に山の木の葉のうつろへば人の心もいかがとぞ思ふ
가을바람에 산 위의 나뭇잎이 색 바래지면 그 사람 마음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네 (古今 卷十四 714) 思ふ よりい か に せ よとか秋 風に な び く浅茅の色こ とに な る
이 이상 어찌 사랑하라고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띠풀처럼 색깔 바뀌는 걸까
(古今 卷十四 725)
어떤 이는 가을바람으로 나뭇잎 색이 바래지면 임의 마음이 어떻게 되는가 고민하게 되고, 어떤 이는 상대의 마음이 가을의 띠풀 색처럼 변해가는 것을 탄식하고 있다.
또한 특별하게 사람을 가리면서 부는 것도 아닐 텐데 가을바람은 이렇게도 사람을 상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식으로 다음처럼 읊고 있다.
来ぬ人を待つ夕暮の秋風はいかに吹けばかわびしかるらむ
안 오는 이를 기다리는 저녁의 가을바람은 어찌 부는 것이기에 이리 쓸쓸한 걸까 (古今 卷十五 777) 秋風は身をわけてしも吹かなくに人の心の空になるらむ
가을바람은 사람을 가리면서 불지 않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빈 껍질 같이 될까 (古今 卷十五 787)
가을바람이 불 무렵 때마침 자신에 대한 태도가 서먹서먹해지고 냉담해지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가을바람이 자아내는 정취가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노래를 부르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가을바람의 가을에 해당하는 일본어의 가을은 ‘아키(秋)’로, 이는 ‘싫증(飽き)’
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키(飽き)’와 동음이다. 이 때문에 ‘아키(秋)’란 계절은 남 녀의 불화나 변심을 의미하는 노래에 많이 등장하고 ‘아키가제(秋風)’의 가어 (歌語)도 그렇게 읊어지는 경우가 많다.
秋風の吹き裏がへす葛の葉のうらみても猶うらめしき哉
가을바람에 날려 뒤집히는 칡잎처럼 원망할수록 더욱 한스럽기만 하다
(古今 卷十五 823)
일본고전시가 속에 나타난 「바람」의 이미지 ··· 南 二 淑…135
우리말로 해석하기 어려운 노래인데 “가을바람에 날려 뒤집히는 칡잎(秋風 の吹き裏がへす葛の葉の)처럼”까지가 다음 구를 수식하는 긴 수식어 ‘죠고토바 (序詞)’19)에 해당한다. 가을바람에 칡의 잎이 뒷면을 보이며 휘날리는 정경을 포착하여 「뒷면(裏)」이라는 말에서 나온 동음의 ‘한스럽다(うらめしき)’라는 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때 ‘아키카제(秋風)’의 ‘아키(秋)’는 ‘싫증(飽き)’의 의 미도 포함하고 있다.
다음 두 수의 노래는 『고센슈(後選集)』에 실려 있다. 이 가집은 일상의 공 간에서 소박하게 읊어졌던 와카를 그대로 소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 래서 증답가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아래 와카는 음력 7월에 어느 여성이 당대 의 호색한인 ‘나리히라’(業平)에게 보낸 노래이다.
秋萩を色どる風の吹きぬれば人の心もうたがはれけり
가을싸리를 물들게 하는 바람이 불기에 당신의 마음에도 싫증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이 부는 게 아닌가요 (後撰 卷五 223)
이 노래에 ‘나리히라’는 첫 구 ‘秋萩を色どる風(가을싸리를 물들게 하는 바 람)’를 그대로 맞받아서,
秋萩を色どる風は吹きぬとも心はかれじ草葉ならねば
가을싸리를 물들게 하는 바람이 불어도 내 마음이 당신을 떠나가지는 않습니다. 금방 시드는 풀잎은 아니니까요 (後撰 卷五 224)
라고 멋지게 응수하고 있다. ‘가을싸리를 물들게 하는 바람(秋萩を色どる風)’란 바로 연인에게 싫증을 느끼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같은 가집에 실려 있는 다음 증답가에도 가을과 싫증을 연상시키는 ‘바람소 리(風の音)’란 가어(歌語)가 사용되고 있다. 연인에게 잊혀 슬퍼하고 있는 여자 친구에게 ‘바람소리(風の音)’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世の中はいかにやいかに風の音を聞くにも今は物やかなしき
두 사람 사이는 어떻게 된 거지요 바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계절이군요 (後撰 卷十八 1292)
라고 읊자, 친구는
19) 단어 그대로 ‘서론이 되는 말’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쿠라고토바(枕詞)가 5음절의 단구(單 句)로 특별한 의미나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죠고토바(序詞)는 두 구 이상으로 특 정 어구를 수식하는 점이 다르다.
世の中は い さともい さや風の音は秋に あ きそ ふ心 地こ そ す れ
두 사람 사이는 어찌 됐는지 어쨌든 바람 소리는 가을(秋)이란 소리가 연상시키는 싫 증(飽き)이 더해진 것 같은 느낌이라오 (後撰 卷十八 1293)
‘秋に あ きそ ふ’란 표 현 을 사 용 하 여 연인과 순조로운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 을 호소하고 있다. 마음을 와카로 캐치볼하고 있는 듯한, 당시 사람들의 모습 을 엿볼 수 있다.
그 밖에도 ‘바람’을 소재로 하여 같은 취지로 읊어진 노래들이 상당수 있다.
吹く風に雲のはたてはとどむともいかが頼まん人の心は
부는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구름은 어딘가에 머무른다 해도 어찌 의지할 수 있을까.
한없이 변해가는 사람마음 또한 그러하다 (拾遺 卷十四 902) 世中はいさともいさや風の音はあきにあき添ふ心地こそすれ
남녀간이란 정말 모르겠다 가을바람 소리를 들으니 싫증에 싫증이 더해가는 느낌이 들 뿐이다 (拾遺 卷十九 1238) 風はやみ峰の葛葉のともすればあやかりやすき人の心か
바람이 세차 산봉우리 칡잎이 뒤집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기 쉬운 게 사람 의 마음인가 (拾遺 卷十九 1251)
이와 같이 가을바람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빼앗아가는 존재로 읊어지고 있 는데 부채와 함께 등장하면 더욱 기피되는 대상이 된다.
ゆゆしとて忌むとも今はかひもあらじ憂きをば風につけてやみなむ
부채를 불길한 것이라고 꺼려해도 별 수 없다 님에게 버림받은 괴로움을 부채 바람에 날려 보내 버리자 (拾遺 卷十九 1270)
『大和物語』91段을 참고하면 후지와라노 사다가타(藤原定方)가 가모마츠리 축제일이 되어 부채를 잃어버리고 예전에 사귀던 여자에게 부채를 요구하자 그 부채 귀퉁이에 적어 보낸 노래이다.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은 남자에게 원망 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부채의 가장자리에 적어 보낸 것이다.
그런데, 부채가 불길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래 노래는 중국 한시 반 첩여(班婕妤)의 「원가행(怨歌行)20)」의 고사를 바탕으로 불린 노래이다.
新裂齊紈素 새로 자른 제나라 흰 비단이
20) 혹은 단선시(團扇詩)라고도 함 육조문화(六朝文化)를 대표하는 시문선집인 『문선(文選)27권』
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