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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チの声 13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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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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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

2006.7

P.2 P.4 P.9

翻訳を語る (13)

中川 李枝子

日本文学の中の韓国 (5)

鷲沢萌&『君はこの国を好きか』

日本語上達のために (11)

オリジナル

目次

http://www.jpf.or.kr 国際交流基金ソウル日本文化センター 日本語部 P.10

データから見える日本の横顔 (12)

高校生の「大事なもの」

名文鑑賞 (10)

『惜しみなく愛は奪う』 P.7

日本人の目 (13)

ベタベタとタプタプ P.8

韓国人の目 (13)

恋人とヨンイン P.11

研究会探訪 (2)

忠北日本語教育研究会 P.12

お知らせ&読者の広場

(2)

中川 李枝子 私の幼い頃の記憶では、お菓子や玩具をねだったことはない が、お話はよくねだった。父や母、祖父祖母など、気の置けな い大人にぴったりついて、「ねえねえ、それからどうしたの?」 と聞く。 ありきたりの昔話でもいいけれど、それより「新しい」話の方 がずっと面白かった。特に父と母の子ども時代の体験談が私は 大好きだった。父は農村育ちのガキ大将であり、母は都会育ち のおてんば娘で、それぞれ話のタネには事欠かなかった。この 二人に共通したのは、お説教や教訓、感情が入り込まない、話 し手も聞き手も一緒に楽しむといった点だ。母は、陰気でかわ いそうな話は子どもに不適切であるときめていた。母はいつ も、子どもは十分に愛されて育つべきだと主張した。 いつの間にか私は読み書きを覚え、学校にあがる前から本が好 きになり、遠くにいる祖父たちに手紙を書いた。 戦争中、学童疎開令が出て祖父の許に預けられた間は、週に二 回、両親に手紙を書くと約束し、忘れると母から矢の催促がき た。作家になろうとは思いもしなかったが、書くことは苦にな らなかった。 戦後 1950 年代、出版が自由になるや、私は外国の小説を翻訳 で片端から読んだ。少々古風な日本語だろうと、難解だろうと、 活字を読むのが嬉しかった。児童文学にも夢中になった。古典 の範疇に入る英米の作品を中心に、ロシア、東欧、北欧、アジ ア諸国などなど、読書による私の見聞は際限なく広がった。そ の中で、第二次大戦を背景にした本に、自分も同時代に育った 子どもとして強く引かれた。オランダの作家、ドラ・ド・ヨン グ(Dola De Jong)著「レヴェル・ランド」(The level land ; Return to the level land)(『あらしの前』『あらしのあと』 吉野源三郎訳 岩波少年文庫)は、今なお繰り返し読む一冊で ある。 終戦の時十歳だった私の最大の関心事は、その後大人になり、 現在に至るまで一貫して、戦争と平和であり、世界中どこの 人々にも共通する幸福な家族についてである。子どもにとって 一ばん大事な居場所は家庭、愛する人はお父さんとお母さん、 兄弟姉妹、そして友だちではないだろうか。戦争はこの大事な ものを奪うのだ。 古今東西の傑作と称するにふさわしい児童文学の数々が日本 語に訳されたおかげで、私は世界中の子どもと出会った。生き 生きした個性ある子どもたちは私を魅了した。子どもと関わる 仕事をしたい、よし、保母になろうと私はきめた。魅力あふれ る子ども達と毎日愉快に過ごせたら、私の人生は最高だ! 高校を卒業すると、児童福祉を学び、園児が 30 人足らずの小 번역을 말한다(13) 아동도서 작가가 되어 나카가와 리에코 나의 어릴 적 기억으로는 과자나 장난감을 사달라 고 떼를 쓴 적은 없으나, 이야기는 자주 졸랐다. 아빠,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등,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어른에게 찰싹 달라 붙어서는「그래 서 어떻게 됐어요? 어서요 어서」라고 재촉했다. 흔한 옛날 이야기도 좋지만, 그 보단「새로운」이야 기 쪽이 훨씬 재미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빠, 엄마 의 어린 시절 체험담을 제일 좋아했다. 아빠는 농 촌에서 자란 골목대장으로, 엄마는 도시에서 자란 말괄량이로, 이것들은 각각 빠지지 않는 단골 이야 깃거리였다. 이 두 사람 이야기의 공통점은 설교라 든가 교훈,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 즉, 말하는 이, 듣는 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 는 음침하고 가련한 이야기는 어린이에게 적절하 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엄마는 늘, 어린이는 넉 넉하게 사랑 받으며 자라야 마땅함을 주장해 왔다. 어느새 나는 글을 익혀 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책 을 좋아하게 되었고, 멀리 있는 조부들에게 편지를 썼다. 전쟁 중, 아동소개령이 내려져 할아버지 곁에 맡겨 진 동안에는 주 2회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기로 약 속했었고, 잊을라치면 엄마에게 재촉의 화살이 날 라왔다.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지만, 쓰는 일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전후 1950년대 출판이 자유로워지자, 나는 외국의 소설을 번역본으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다소 고풍 스러운 일본어일지라도, 난해하더라도 활자를 읽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아동문학에도 심취해있었다. 고전의 범주에 들어가는 영미작품을 중심으로 러 시아, 동유럽, 서유럽, 아시아 여러 나라 등등, 독 서로 인한 나의 견해는 끝 없이 그 폭을 넓혀갔다. 그 중에서 제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책에 나 또한 동시대에 자란 아이로써 강하게 끌렸다. 네덜란드 작가 도라 드 종의 작품 『The level land』는 아직 도 반복해서 읽는 책 중의 한 권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 10세였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어른이 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전쟁과 평화였으며,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행 복한 가족에 대한 것이었다.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 장 소중한 존재장소는 가정,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 지와 어머니,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이 아닐까. 전쟁은 이런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걸작으로 불릴만한 다수의 아동문학 작품이 일본어로 번역된 덕분에 나는 세계의 어린 이와 만날 수 있었다. 생기발랄하고 개성 있는 어 린이들은 나를 매료시켰다. 어린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보모가 되기로 했다. 매력 넘 치는 어린이들과 매일 유쾌하게 보낸다면 내 인생 은 최고인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동복지를 공부하고 원아가 30명이 채 안되는 작은 보육원에서 근무했다. 직접 만난 생동감 넘치는 어린이들의 귀여움이라 고 하면, 퇴근길의 부모에게조차 아이를 돌려보내 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아이 할 것 없이 나 의 어린 시절과 같아서 이야기와 그림책을 좋아했 다. 어떤 아이도 감성이 날카롭고 상상력이 풍부하 여 창조력이 넘쳤으며, 놀이에는 일가견이 있어서 http://www.jpf.or.kr 翻訳を語る

(3)

さい保育園に勤めた。 直接出会った生きた子どもたちのかわいいことといったら、親 が迎えにきても帰したくないくらいだった。どの子もみな、私 が幼かった頃と同じで、お話や絵本を喜んだ。どの子もみな、 感性が鋭く、想像力豊かで創造性にあふれ、遊びの名人で、空 想と現実の世界を自由に行き来できた。そんな子どもの「面白 いお話して」の掛け声に、私は生まれて初めて物語を作った。 日頃の遊びをヒントに、園の生活をからませた六篇が『いやい やえん』のタイトルで 1963 年に出版、日本中の幼い子がとて も面白がってくれた。初版の読者はもう親になり、親から子へ、 今も読まれている。 この本はすぐロシア語に訳された。30 万部が売れ、ソヴィエ ト各地の保育園では物語の一つにある「くじらとり」の遊びが 大流行と聞いた。ドイツ語訳も出た。 残念ながら、外国語のわからない私には、自分の本がどう訳さ れたのか知る術はなく、ただただ、真実を伝えてもらいたいと 願う。 1963 年出版の絵本『ぐりとぐら』は英語、フランス語、中国 語、タイ語、クメール語、オランダ語、デンマーク語、韓国語、 エスペラントに翻訳されている。 この 40 年間、お話をねだる子どもたちを満足させたくて、私 は一所懸命物語を書き、歌も作ってきた。アニメ映画『となり のトトロ』の挿入歌『さんぽ』は、日本の各地でほとんどの子 が歌ってくれる。こんなに嬉しいことはない。 が、とにかく、地球上の全ての子どもが大人たちの愛情をたっ ぷり注がれて幸せに育ってほしいという思い、そのためにも、 戦争と平和の課題を忘れずに、私はこれからも書いていきた い。

『Japanese Book News 第 36 号より転載』

中川 李枝子

(なかがわ りえこ) 学生時代、同人誌「麦」に参加。保育園勤務のかたわら同人誌「いたど り」を発行する。最初の作品『いやいやえん』 (1962 年)でNHK児童 文学奨励賞、サンケイ児童出版文化賞、児童福祉文化賞、野間児童文芸 推奨作品賞受賞。以後、幼児を対象とした創作を中心に活動。作品に『ぐ りとぐら』、『そらいろのたね』、『かえるのエルタ』、『ももいろの きりん』、『たんたのたんけん』、『らいおんみどりの日曜日』等多数。 エッセイ集に『本・子ども・絵本』、『絵本と私』がある。 ※ 当センター文化情報室で 8 月初旬より貸出可能。 공상과 현실세계를 자유로이 왕래했다. 그런 어린 이들의「재미있는 이야기 해줘요」라는 성원에 난 난 생처음으로 이야기를 지었다. 일상의 놀이를 힌트로 보육원의 생활에 얽힌 6편 을 『いやいやえん(번역본:싫어 싫어 유치원)』이란 타이틀로 1963년에 출판하여, 일본의 어린이가 참 재미있게 읽어 주었다. 초판의 독자는 이미 부모가 되어, 그 부모가 아이에게, 지금도 읽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러시아어로 번역되었다. 30만부가 팔 려 소비에트 각지의 보육원에서는 이야기 속의 『く じ ら と り (고래잡이:서명이기도 함) 』 놀이가 크게 유행했다고 들었다. 독일어로도 번역되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외국어를 모르는 나에게 자 신의 책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 도리는 없고, 그저 진실을 전해주기 바랄 뿐이다. 1963년에 출판된 그림책 『ぐりとぐら(번역본:구리 와 구리)』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태국어, 크메 르어, 네덜란드어, 덴마크어, 한국어, 에스페란토어 로 번역되었다. 최근 40년간 이야기를 해달라며 매달리는 어린이 를 만족시키고 싶어 난 열심히 이야기를 써왔으며 노래도 만들었다. 만화영화 『となりのトトロ(번역 본:이웃집 토토로)』의 삽입곡 『さんぽ』는 일본 각 지에서 거의 모든 어린이가 불러주었다. 이렇게 기 쁜 일은 없다. 여하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린이가 어른들의 애정을 듬뿍 받아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이를 위해서도 전쟁과 평화의 과제를 잊지않고, 나는 앞 으로도 쓰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http://www.jpf.or.kr 翻訳を語る 원서명:『いやいやえん』 서 명: 싫어 싫어 유치원 出身地:北海道 出身校:京都立高等保母学院卒業 児童文学作家 1935 年 9 月 29 日生まれ ※ 他にも翻訳版多数あり 원서명:『ぐりとぐらのおおそうじ』 서 명: 구리와 구라의 대청소 한림 03.10 원서명:『ももいろのきりん』 서 명: 분홍색 기린 아이들판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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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 속의 한국 (5) -사기사와 메구무의 『당신은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18세로 작가에 데뷰한 사기사와 메구무는 본 격적인 순수문학 소설에서 도박을 즐기는 경 묘한 수필에 이르기까지 실로 폭 넓은 작품을 썼다. 사기사와는 20세가 지나 자신에게 한국 인의 피가 「4분의 1」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된다. 그 후,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1993년에 연세대학의 어학당에 유학하였으며, 작품에도 한국과 재일한국인을 제재로 한 것 이 다수 있으나, 그 중에서 소설 『당신은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번에도 줄거리부터 안내하겠다. 재일동포 아미(마사미)는 한국에 어학유학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 학위를 취득하려고 한다. 어학당 멤버들의 지원아래 학생 생활을 보내 나, 이내 커다란 벽에 부딪치게 된다. 한국의 현실에 잘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독 인 간관계에 있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한밤 중에「지금 한 잔하고 있는 중인데, 나오지 않 을래」라며 걸려오는 술자리 권유 전화를 받기 도 하고, 공용 냉장고에 넣어 둔 화장품이 누 군가에 의해 무단으로 사용되는 등…. 타자와 의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아 미, 이곳 한국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 어서 그 농밀도가 지나치다. 아미에게는 이 곳 사람들이 거칠고 뻔뻔스럽게 느껴져, 거식 증에 가까운 상태까지 빠지게 된다. 「이래서 이 나라는….」 아미는 몇 번이고 이렇게 투덜거리지만, 거칠 게 소리를 높이는 일 없이 꾹 참고 한국의 현 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전부터 늘 신경이 쓰였던 도로 의 간판 「비보호」에 대하여 친구에게 물어 볼 기회가 생겼다. 「저 간판, 어떤 의미일까…?」 그러자 오사카 출신인 친구는「비보호」란, 즉 「돌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돌아라. 하지만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의미라고 가르쳐 주었다. 「역시 이 나라는 너무 심해…」 아미는 크게 웃으며 이렇게 내뱉는다. 그러자 지금까지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것이 어깨에 서 떨어져 나간다. 이 일을 계기로 아미는 벽 을 뛰어넘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다. http://www.jpf.or.kr 日本文学の中の韓国 18 歳で作家デビューした鷺沢萠は、本格的な純文学の小説か らギャンブル好きの軽妙なエッセイまで実に幅広い作品を書 いた。鷺沢は 20 歳を過ぎたころ、自分に韓国人の血が「四分 の一」流れている事実を知る。その後韓国語を学び始め、1993 年に延世大学の語学堂に留学、作品の中にも韓国や在日韓国人 を題材にしたものが数多くあるが、ここではその中から小説 『君はこの国を好きか』を紹介しよう。いつものようにあらす じから。 以上かなり省略したが、ここで考えてみたいのは、雅美の変化 の意味をどう理解するかということだ。当初雅美は、韓国の現 実に不満を持っている自分を認められなかったのだが、標識の 在日僑胞の雅美(アミ、まさみ)は韓国に語学留学し、 大学院に進学して学位を取ろうと考えている。語学堂に 通う仲間たちに支えられて学生生活を送っているが、や がて大きな壁にぶつかる。韓国の現実にうまく適応でき ないのだ。とりわけ人間関係には悩まされる。夜中に電 話してきて「今、飲んでいるから出てこないか」と誘わ れたり、共用冷蔵庫に入れてあった化粧品を無断で使わ れたり…。他者とのあいだに「安全な距離を保ちたい」 雅美、ここでの人と人との関係は濃密過ぎる。人々がが さつで図々しく感じられ、雅美は拒食症に近い状態に陥 ってしまう。 「これだからこの国は…」 雅美は何度もそう呟くが、声を荒げることはせず、 じっと我慢して韓国の現実を受け入れようとする。 そんなある日、以前から気になっていた道路で見かける 비 보 호 「 」という看板について友人に質問をする機会が あった。 「あの看板、どういう意味なんでしょうかねえ……?」 すると大阪出身の友人が「非保護」つまり「曲がりたい 奴は勝手に曲がれ。でもそれで事故が起きても知らない ぞ」という意味だと教えてくれた。 「やっぱこの国はヒドいよオ……」 雅美は大笑いをしながら口に出して言う。すると今まで 背負っていた重いものが肩から落ちた。この出来事を契 機に、雅美は壁を乗り越え、大学院で碩士(ソクサ: 日本でいう修士)を修得する。

(5)

이상 상당부분 생략하였으나, 여기에서 주목 하고 싶은 것은 아미의 변화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당초 아미는 한국의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신 을 인정할 수 없었으나, 하나의 표지로 인해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미는「비보호」의 <위험 하지만 본인이 책임을 진다면 마음대로 하시 오>라는 메시지에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도 구 제받은 것은 아닐까. 그 때까지 아미는 <한국 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그것은 <한국을 비판하지 않는 나>로 있는 편이 안전하고 편했기 때문 이다. 한국을 비난하지 않으면 한국인과 다투 는 일 없이 지낼 수 있으며, 우등생으로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을 좋아하고 싶은 나>의 내면에 일말의 갈등도 생겨나지 않는 다. 그것은 즉,「보호」된 상태이지만 거기에는 자유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를 벗어나 「 비보호 」 를 받아들이게 되면, 한국에 대한 불평불만을 자신이 품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 하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필히 갈등이 생기겠지만, 아미는 한층 한국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미가 그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에서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한국어 공부를 계 속하여, 끝내 연구실의 친구에게「아미는 정말 오기가 대단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기 때문 이다. 즉, 변화를 이뤄낸 후의 아미는 한국을 비판하는 자유를 갖게 된 만큼, 한국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 대한 불만을 봉인하고 있었던 시절의 아미를 말하자면, 실은 한국에 불성실 한 위선자였던 것이다. 노파심에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아미가 위험을 뛰어넘을 수 있었 던 것은 한국을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라 갈등 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의 관 계에 있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 다. 세계 속의 어는 누구든「보호」아래 있는 인간은 갈등을 피함으로써 편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친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이라는 유학체험 수필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풍요로움이 뒷받침된 삶에서 우리들은 사실 을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첫 세대일지도 모른다」 1968년생인 사기사와 메구무는 한국의 386세 대에 해당하는데, 그들 세대야말로「비보호」 파끼리의 진정한 우정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첫 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 수 필에는 꽃에 얽힌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소 개되어 있다. 유학시절 잡지사의 취재를 받은 사기사와는 http://www.jpf.or.kr 日本文学の中の韓国 一件をきっかけにして認められるようになった。雅美は「非保 護」の<危険だが自分で責任をとるなら自由にしなさい>とい うメッセージにあきれつつも救われ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そ れまで雅美は<韓国を好きになら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 強迫観念にとらわれていたが、それは<韓国を批判しない私> でいるほうが安全で楽だったからだ。韓国の悪口を言わなけれ ば韓国人と喧嘩をせずに済むし、優等生でいられる。なにより <韓国を好きでいたい私>の内面にいささかの葛藤も生まれ ない。それはすなわち「保護」された状態であるが、そこには 自由がない。しかしそうした状態を脱して「非保護」を引き受 けるなら、韓国への不平不満を自分が抱いている事実を素直に 認め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もちろんそこには葛藤が生じるに 違いないが、雅美は一層韓国に愛着を持つようになったといえ るだろう。なぜなら雅美はどんなにつらくても韓国にとどまっ て韓国語の勉強を続け、ついには研究室の友人から「アミはほ 오 기 んとうに *1 が強い」とまで言われるようになったのだか ら。つまり、変化を遂げた後の雅美は韓国を批判する自由を持 つようになった分だけ、韓国を深く理解できるようになったと いえ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韓国への不満を封印していたとき の雅美は、実は韓国に対して不誠実な偽善者であったのだ。念 のため強調しておきたいのだが、雅美が危機を乗り越えること ができたのは韓国の悪口を言ったからではなく、葛藤を引き受 けたからである。韓国人と日本の関係においても同じことがい えるだろう。世界中の誰であれ「保護」下にある人間は葛藤を 回避することで楽ができるが、真の友人になることはできな い。 『ケナリも花、サクラも花』という留学体験エッセイに次のよ うな記述がある。 「豊かさに裏打ちされた中でこそ、わたしたちはほんとうのこ とを言える。いわば、わたしたちはほんとうのことを言えるは じめての世代であるかもしれない」 1968 年生まれの鷺沢萠は韓国の 386 世代*2 に相当するが、彼 女たちの世代こそが「非保護」派同士の真の友人関係を築ける 初めての世代であるといえ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また同書に は、花にまつわる次のようなエピソードが紹介されている。 留学中、雑誌の取材を受けた鷺沢萠は、同年代の女性編集者と すっかり意気投合した。写真撮影のため公園に出かけると、黄 色い花が咲き乱れている。日本語では「れんぎょう」というそ の花の韓国名を編集者から教えてもらうが、鷺沢はなかなか覚 えることができない。何度も間違えてしまう鷺沢に、編集者は 明るい笑顔で正しい言葉を教えてくれる。後日雑誌を見た鷺沢 は、満開の「ケナリ」を背景にした自分の写真、そしてそこに つけられたキャプションを読んで感心する。 「鷺沢萠は、私たちの国が愛する花、ケナリの名前を訊ねた。 盛りの季節のケナリのむこうでは、サクラの花も美しく咲いて いるのが見える」

(6)

この文はふたつの文化の共存を淡々と描写している。ことさら 日韓友好を叫んでいるわけではないところがかえって心にし みる。 最後に『君はこの国を好きか』のあとがきを引用して今号を締 めくくることにしよう。鷺沢の韓国に対する強い思いが読み取 れる。 「こういった単行本のあとがきでは、たいてい最後に謝辞があ るが、この本にかんしてだけはそういう儀礼的なこととはまっ たく違う立場でありがとうをいいたい人たちがたくさんいる。 まずは私が韓国で出会ったすべての友人たち。百万言を費して も彼らに対する気持ちはあらわし切れない。夜ごとの電話に付 きあってくれた彼らのことばが、いちばんの励ましであった。 生まれてはじめて、後ろで誰かが支えていてくれる、という感 覚を味わった。生まれてはじめて、怖くなかった」 (フリーランスライター 星野ほ し の政美ま さ み) 동연배의 여성편집자와 완벽하게 의기투합했 다. 사진촬영을 위해 공원으로 나가자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일본어로는「랭 교 」 라 불리는 이 꽃의 한국명을 편집자에게 배우지만, 사기사와는 쉽게 외울 수 없다. 몇 번이고 틀리고 마는 사기사와에게 편집자는 밝게 웃는 얼굴로 정확하게 가르쳐 준다. 후 일 잡지를 접한 사기사와는 만개한「개나리」 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사진, 그리고 거기에 달린 캡션을 읽고 감탄한다. 「 사기사와는 우리들의 나라가 사랑하는 꽃, 개나리의 이름을 물었다. 만개한 개나리의 저 편에서는 사쿠라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것이 보인다」 이 문장은 두 문화의 공존을 담담하게 묘사하 고 있다. 특히 일한우호를 부르짖고 있는 것 이 아니라는 점이 도리어 가슴을 울린다. 마지막으로『당신은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의 후기(後記)를 인용하며 맺고자 한다. 사기 사와의 한국에 대한 강렬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단행본 후기의 마지막엔 보통 감사의 변이 오지만, 본서에서 만큼은 그런 의례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 고 싶은 사람이 많다. 먼저, 내가 한국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 백만 개의 말로도 그들에 대한 마음을 전부 전할 수 없다. 밤마다 전화로 만나 주었던 그들의 말이 제일의 위안이고 격려였다. 난생처음 뒤 에서 누군가가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는 느 낌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렵지 않았 다」 【カチ】 http://www.jpf.or.kr 日本文学の中の韓国 鷺沢萠(さぎさわ めぐむ) 1968~2004 18歳のとき小説『川べりの道』でデビューし、同作は第64回文学界新 人賞を受賞(1987年)。演劇の脚本やプロデュースにも携わる。『駆 ける少年』で第20回泉鏡花文学賞を受賞(1992年)したほか、小説『帰 れぬ人びと』や『葉桜の日』などで計4回芥川賞候補になる。『海の 鳥・空の魚』、『スタイリッシュ・キッズ』、『ビューティフル・ネ ーム』など著書多数。エッセイ集に『ナグネ 旅の途中』、『この惑 星(ほし)のうえを歩こう』、『かわいい子には旅をさせるな』など。 未完の遺作『春の居場所』は映画化された。 *1 오기(傲気):「勝ち気、負けず嫌い、痩せ我慢、傲慢といったニ ュアンスを持っているが「韓国人の오기」という言い方は「日本 人の義理人情」のように、韓国人の気質を表現するときによく使 われる」(『君はこの国を好きか』より) *2 386 世代:現在(ことばが造られた当時)30 代で、80 年代に大学時 代を送った、60 年代生まれの世代。 鷺沢萠のホームページ: http://homepage1.nifty.com/meimei/ ※ 当センター文化情報室で貸出可能。

(7)

http://www.jpf.or.kr 日本人の目 日韓間の文化交流熱が年々高まっている。それに 伴ってかどうかはわからないが、私の周りでは日 韓カップルが急増中である。全体的な傾向を見る と、韓国人男性と日本人女性というカップルが多 いようだ。日韓カップルが増えているというの は、同志である私にとって喜ばしいことであるが (我が家は日本人男性と韓国人女性)、うまくい かずに破局を迎えるカップルもまた多い。男女関 係は同じ国の人同士であっても永遠のテーマで あり、別れてしまうのにはいろいろな理由がある のだろうが、日韓カップルが抱える問題を考える とき、「恋愛観の違い」は無視して通れない要因 のひとつのようである。 「韓国では人と人が近い」、「日本人はなんだか よそよそしい」というのはよく耳にする言葉であ るが、日韓カップルも、この「距離感」の違いに 戸惑うことが多いようだ。 日本人にとって、他人と「適当な」距離が取れる ということは、クールでかっこよく、また都会的 なことである。日本の小説を読んでいると、相手 のプライバシーにはある程度の距離を持って付 き合っている恋人同士が登場してきて、自分が日 本人ながら驚くことがあるが、「相手に必要以上 に干渉しない代わりに、自分の領域も尊重しても らう」というのが、日本人が理想とする人間関係 だろう。 いっぽう韓国人のカップルを見てみると、その関 係は一心同体かと思うほど「ベタベタしすぎ」て いる。私の勤務する大学のキャンパスにも、「フ ォークダンスばりの密着度」で闊歩している恋人 達があちらこちらにたくさんいる。韓国人にとっ て愛情とは「形として表現してこそ意味がある」 ものであり、日本人好みの「秘めた思い」などと いうのは、甚だ「タプタプハダ(もどかしい)」 そうだ。 もし「相手に対する愛情表現期待度」などという ものがあるとしたら、「韓国人女性>韓国人男性 >日本人女性>日本人男性」の順になるであろ う。韓国人男性と日本人女性のカップルが増えて いるのも、うなずける。 ところで、これは私が日韓カップルを観察してい て気がついたことなのだが、うまくいっているカ ップルというのは「日本人が平均的日本人より韓 国的、あるいは韓国人が平均的韓国人より日本 的」な感覚を持っている人が多いようである。う まくいくために特別な努力をしているのではな く、「距離感が似ている」ことが、二人を結びつ けているのだろうか。もちろん、似ていなくても 長く続いているカップルはたくさんいるのだか ら、やはり恋愛や結婚で一番大切なのは相手に対 する思いやりであろう。そして場合によっては、 妥協も必要だ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 (これはそのまま国際交流にも当てはまるが…) そんなことを考えていたら、ふと、ひと昔前に日 本で流行った歌が思い出された。 「育ってきた環境が違うから好き嫌いは否めな い…ましてや男と女だからすれ違いはしょうが ない♪」 世の中のカップルたちよ、「やれるだけ、頑張っ てみてよ♪」 ソウル大学言語研究院日本語研究員 稲川 いながわ 右樹ゆ う 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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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pf.or.kr 韓国人の目 韓国でバレンタイン・デーやホワ イト・デーを過ごしたことがある方 なら、カップルたちの様子を見て驚 いた経験があるでしょう。大きな花束 やクマのぬいぐるみをうれしそうに抱えた女の 子や、カラフルな箱や袋を女性のために持ってあ げている男性など、街のあちらこちらで目にしま す。 いっぽう日本では、このような日にそれほど派手 な演出はしないようです。以前、バレンタイン・ デーに日本のデパートへ行ってみたことがあり ますが、そのときもシンプルな包みが多かったよ うに思います。 こうやって比べてみると、韓国は中身よりも外側 を重要視しているようです。実際、プレゼントよ りも包装にお金をかけることもあります。 韓国には恋人のためのイベントがたくさんあり ますが⋆1、一番大切なのは、「付き合ってから 100 日目」の記念日です。 この日、韓国の女性 たちは「感動的なイベント」を期待します。そし て、期待をたくさんかけられた男性たちは、自分 の彼女を感動させるために、さまざまな努力をし ます。街のど真ん中で告白したり、友達からお祝 いのメッセージを集めたり……。また、記念日だ けにとどまらず、付き合っている間はお互いが 「絶え間なく連絡を取り合うこと」が愛情を表す 最善の方法だと思っているようです。こういうニ ーズがあるからでしょう。 韓国の電話会社には、カップルとして登録をすれ ば二人の間の通話やメールが完全に無料になる 「カップル料金制」というサービスまでありま す。 以上の例からもわかるように、韓国のカップルに は「私たちは付き合っているんですよ~」と周り にアピールしようとする傾向があるようです。た くさんの「愛情の証拠」を示し、周りの人たちか らカップルとして認めてもらう……。そういった 行動の中には、日本人から見れば「恥ずかしい」 と思うようなものも含まれているかもしれませ ん。 いっぽう日本の場合は、周りに恋人同士であるこ とを誇示するよりは、二人だけの思い出をたくさ ん作り、愛情を育てていくことを大切にしている ようです。「みんなの前で愛を告白する」などの 大胆なことはめったにしません。 日本語の「恋人」という言葉からは、「一緒にデ ートをしたり、愛情を分け合ったりする相手」と いうイメージが浮かびますが、韓国語の「恋人(ヨ ンイン)」は「お互いのすべてを共有する」間柄 という感じがします。このような違いがあるた め、日本人と韓国人が付き合うときには、さまざ まな摩擦が生じます。たとえば、なかなか感情を ストレートに出さない日本人に韓国人がイライ ラしたり、相手を拘束しようとする韓国人に日本 人が逃げ出したくなったり…… このように「愛」に困難はつきものですが、本当 の「愛」は困難を乗り越えたところにあるという 点は、どこの国でも同じでしょうね。 朴世美 西江大学1年生 李秀賢氏記念韓国青少年招聘事業⋆2 第3期研修参加者 ⋆1 上に挙げたバレンタイン・デーやホワイト・デーの他に、 ダイアリー・デー、ワイン・デーなどがあります。 詳しくは、以下のサイトをご覧ください。(編集部より) http://www.konest.com/data/korean_life_detail.html?no=579 ⋆2 「李秀賢氏記念韓国青少年招聘事業」に関しては 12 ページをご参照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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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pf.or.kr 日本語上達のために 先日、日本文化の授業の中で「オリジナル結婚 式」に話が及んだときのこと。受講生のひとり が言った「オリジナル結婚式というと、韓国で は伝統的な結婚式を思い浮かべるのですが」と いうことばに、私はハッとさせられた。 私は「オリジナル」が外来語であったため、韓 国でも同じ意味で使われていると勝手に思い込 んでいたのだ。 日本で言う「オリジナル結婚式」、略して「オ リ婚」は、式場選びや順序、方法など、従来の 型にとらわれず、個性的な趣向を凝らした独創 的な結婚式のことである。1986 年から 1991 年 のバブル好景気の頃の「ハデ婚」ブーム、バブ ル崩壊後の「ジミ婚」ブームに続く、自分らし さを大切にした今流行の結婚式だ。 では、英語の original とはどんな意味だろう か。 ①最初の、原始の ②独創的な、独自の ③原文の、原型の (ジーニアス英和辞典) 日本では②の独創的という意味で使われること が圧倒的だが、韓国では①と③の「原始の」、 あるいは「伝統的な」、「元祖の」という意味 で、やや重厚なニュアンスで使われることがほ とんどだという。 試 ため しにインターネットで「オリジナルTシャツ」 を検索してみると、日本では、色、ロゴ、イラ ストなどを選んで自分だけのTシャツを作る、 いわゆる「マイ T シャツ」に関する情報が出て きたが、韓国では有名ブランド品を掲載したペ ージで「本物のブランド品」という意味で使われ ていた。要するに「オリジナルではない」もの は「偽ブランド品」だというわけだ。 また、「オリジナルDVD」を検索してみてわ かったのは、日本では独自に編集されたDVD、 韓国では不法コピーではない「市販のDVD」を 指すということ。「オリジナルではない」のは、 日本ではありきたりのDVD、韓国では「海賊版」 となる。 さらに「オリジナル・シナリオ」は、日本では「そ の作品のために書き下ろした創作シナリオ」(小 説や舞台劇のシナリオの脚色ではないもの)を、 韓国では「初版のシナリオ」を指すのだそうだ。 このように、「オリジナル」 と言っても、日本 人と韓国人では、ずいぶんニュアンスが違ってく ることになる。翻訳や通訳をする際には、注意が 必要なことがおわかりいただけるだろう。 もちろん、「オリジナルブレンド」のコーヒーが 常連さんの人気を得て「定番ブレンド」として認 められていくように、「優れて独創的なものだか らこそ新たな元祖となっていく」ということを考 えると、「独創的」も「元祖」も、根本的には同 じだと捉えることもできるのだろうが。 いずれにしろ、このように微妙な違いに気づき、 調べながらいろいろな発見をすることこそが、語 学を学び、文化に触れることの醍醐味ではなかろ うか。 (西京大学校日語学科助教授 泉いずみ 千春ち は る) 参照:https://www.shumurie.co.jp/shumurie/orginal1.html http://www.fpanet.co.jp 「オリジナル」(広辞苑による) ①独創的。特有の「~な発想」 ②原物。原型。特に、美術品・文芸作品の原画・原作・原典・ 原本。複製・模造品・翻訳などに対していう。 ③書きおろしの創作脚本・戯曲など (著者注) たとえば「オリジナルプリント」は、日本では一般的には① の意味で使われているが、版画や写真など美術品においては、 作家が限定番号をつけて世に出す作品を指し、②の意味とな 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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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10.0 20.0 30.0 40.0 50.0 60.0 70.0 80.0 http://www.jpf.or.kr データから見える日本の横顔/日本語名文鑑賞 『青空文庫』(http://www.aozora.gr.jp/)より転載 情報源: 今回参照したのは、文部科学省所管・財団法人日本青少年研究所が行った「高校生の友人関係と生活意識」の結果す。 調査は 2005 年 10 月~12 月、4カ国の高校生計約 7300 人を対象に実施されました。 http://www1.odn.ne.jp/youth-study/ 上のデータは「現在、大事にしていることは何ですか」という質問に対する、4カ国の高校生の回答です(複数回答)。韓 国・中国・アメリカでは、75%以上の生徒が「成績の向上が大事だ」と答えていますが、日本の生徒は、その半分以下の 33%。 では勉強以外のことを大事にしているのかというと、そうでもないようです。この質問に対する回答の選択肢としては、ほ かに「何か特技を持つ」、「遊んだり好きなことをしたりする」などがありましたが、日本のデータで 40%を超えた項目は ありませんでした。 「大切に思うことがあまりない」のでしょうか。そうだとすれば、これは早急に対応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事態だと思うの ですが、みなさんはどうお考えで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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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pf.or.kr 研究会探訪問 沿 革:1981 年 会員数:85 名 地域研究会(16 ケ所) ソウル、京畿道、仁川、釜山、大 田、大邱、光州、蔚山、江原道、 忠北、忠南、慶北、慶南、全北、 全南、済州道 ★忠日研のホームページ http://cafe.daum.net/cjesa/ 中学・高校の日本語教師の 研究会を紹介するコーナーです。 カチ: 忠北日本語教育研究会(以下、忠日研)は 長い歴史を持つ研究会だと聞いておりますが…。 林乙澤先生(会長): 忠日研は 1981 年に結成さ れ、私が三代目の会長を務めています。結成から 現在まで、年 2~3 回のペースでセミナーを開催 してきましたが、毎回、登録会員の 60~80%が参 加をしています。 カチ: 非常に高い参加率ですね。その原動力は、 日頃の活動にあると思いますが、 具体的にどの ような活動をなさっているのか、お教えいただけ ますか。 会長: 活動の中心としては、まず学習資料の開 発が挙げられるでしょう。資料は、主に忠日研の 日本語教師の集まりの「カフェ(ダウム)」や授業 研究発表会を通して収集したものを CD-ROM にし、 セミナーや集まりなどで配布しています。 昨年度の例を挙げますと、①全国授業研究発表大 会の予選に出た教師の学習資料、②道教育庁の支 援で製作した ICT 活用教材、③第2外国語教科教 育研究会製作の文化・生活会話中心などの資料を 製作・配布しました。 カチ: 開発されたさまざまな教材が会員のみな さんの間で共有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ね。 会長: はい。また、定期的に行われている活動 として「学生会館多国語教室」というのがありま す。これは清州市内の高校生(1,2 年生 40 名)を対 象として、ネイティブ教師と韓国人教師が授業を 行うもので、7~8 年前から始められた、道教育庁 の支援によるプログラムです。ドイツ語・フラン ス語・中国語・日本語の 3 カ国語の授業が週 1 回 あり、また発表会も年 2 回開かれています。 カチ: 道教育庁からは、いろいろな支援がある ようですね。また、忠日研も堅実な運営をされて いらっしゃるようですね。ところで、忠北の日本 語教育事情は、現在どういった状況でしょうか。 会長: 現在、忠北の第2外国語教員数は 150 名 いますが、そのうち半分以上の 85 名が日本語教 師です。次に多いのは中国語教師ですが、その数 は 35 名ですので、圧倒的に日本語教師の数が多 いことがおわかりいただけるでしょう。ただ、中 国語の需要が年々増えつつあるので、今後、この 数が逆転する可能性が高いですね。 カチ: 状況の変化に合わせて忠日研のあり方も 変え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ですね。そのほ かに、運営上ご苦労されている点はありますか。 会長: 課題といえば、学校の業務と並行して活 動する上での時間に余裕がないこと、また、なか なか十分な予算を確保できないことなどが挙げ られます。こういった状況は、おそらく他の地域 の研究会でも同様だと思いますが……。 カチ: 解決方法を見つけるのが難しい課題です ね。では最後に、今年度そしてこれからの忠日研 の目指す方向について、お聞かせください。 会長: まず今年度の計画からお話いたします と、主要事業の一つとして、8 月に蔚山で開かれ る「全国授業研究発表大会(韓日研主催)」に向け て予選を開くこと、またこの予選の際に集められ た資料を中心に新たな授業資料を製作すること が挙げられます。 また、長期的な目標としては、先程お話した課題 を解決することが目標の一つです。また、現時点 では忠清大学との交流がありますが、これからま すます大学との連携や他機関との交流を深めて いくが必要だと思っています。 そして、これが最も大切なことだと思うのです が、「教師ひとりひとりが第2外国語の大切さを 自覚し、それを学習者にわかってもらえるよう、 地道な努力を重ねていくこと」を、目指していき たいと思っています。 カチ: 忠日研がますます発展していかれますよ う、お祈りいたします。本日はありがとうござい 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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ご好評をいただいていた「場面で学ぶ日本語」は前号で終了いた しました。センターホームページでは新コーナー『今すぐ使える 日本語』が連載中ですので、こちらもぜひご覧ください。 ご意見・ご感想をいただいた方の中から抽選で2名様に「翻訳を 語る」コーナーで紹介した本をプレゼントしております。今号の 締め切りは 8 月 31 日です。みなさんからのお便りをお待ちいた しております。 http://www.jpf.or.kr お知らせ/読者の広場

応募先:[email protected]

6 月 2 日に日本語講座の卒業式および修了式が行 われました。今学期は 11 名の方が卒業(=4学 期を修了)されました。日本語講座の概要につい ては、当センターのホームページをご覧くださ い。 『カチ』の編集を担当し、誌面を通じて多くの方と出逢うことが できました。これからは一読者として、『カチ』の羽ばたきを見 守らせていただけたらと思います。2年間、ありがとうございま した。(あ) 이문화와의 갈등을 받아들인 순간, 한국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아미(P.4일본문학 속의 한국)를 보면서, 이문화수용에 대한 우 리의 자세를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문화수용에는 어떤 갈등이 있는지요? (J) 人命救助のため事故で死亡した李秀賢氏の勇気 ある行動を称える事業。2001 年度より毎年 10 名 (本年度より 20 名)の韓国人高校生を日本に招聘 し、日本の文化や両国の同世代の交流を通して総 合理解を深めてもらうことを目的とする。 ☛(本年度の予定) 募集:10 月中旬 試験:12 月 研修期間:2007 年 2 月中(11 日間)

①陸軍情報学校日本語課程(3 月 23 日)

教官および学生 23 名。 施設見学、「相撲」に関する講義、ビデオ鑑賞を 楽しまれました。

②梨花併設メディア高校(5 月 27 日)

教諭および生徒 17 名。 ゲームや歌を交えた日本語授業を体験されまし た。 <感想> ♬외국인을 만난다는 자체로 긴장되었었는데, 이번 기회로 자신감이 생겼다. (1 학년 학생) ♬내년에도 다른 후배들과 다시 찾고 싶다. (2 학년 학생) 毎号楽しく読んでいます。いつも色彩や構成が愛ら しく、読みやすいですね。私が一番好きなコーナー は「韓国人の目」。日本人の気がつかない視点で書 かれているので、おもしろいです。また、12 号の記 事では、中野重治の詩を解析した記事を興味深く読 みました。(韓国在住 会社員)

参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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