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민사사건관리방식은 충실한 사실심리와 재판다운 재판을 통한, 질 높은 사법서비스의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 방식에서는 시간과 노력의 확실한 절감(법원출석회수의 감소, 법정 중심에서 사무실 중심으로의 업무패 턴변화 등), 충분한 변론기회의 보장, 재판결과에 대한 예측가능성 증대 등 유용한 점이 많으므로, 그 정착을 위해 실무계의 적극적인 이해와 자발적인 협조가 요망된다.
3. 의료과오소송의 심리방식
의료과오소송의 심리방식은 사안에 따라서 다르겠으나, 일반적인 민사소송 절차상의 주장, 입증책임의 소재에 얽매어 변론준비 및 시작단계에서부터 청 구원인사실을 명확하게 제시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법원의 적극적인 소송지휘 아래 증거의 수집, 보전을 하고 심리를 진행하여 가면서 서서히 쟁 점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의료과오소송은 통상 증거자료 의 수집과 쟁점정리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불필요한 기일의 공전을 최소화하고 서면에 의한 주장과 쟁점의 정리, 기일전 증거조사, 조정 및 화해 기일, 쟁점정리기일 등의 순서로 진행하는 새로운 민사사건관리방식에 적합 한 소송유형이라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필자가 관여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판절차를 중심으로, 새로 운 민사사건 관리방식의 각 진행단계별로 의료과오소송의 심리방식을 소개하
1 법원행정처,“새로운 민사사건관리 모델”, 실무편람(2001), 21쪽 개요도 참조
고, 의료분쟁의 특수성에 따라 실무상 특히 유의하여야 할 문제점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Ⅱ. 서면에 의한 쟁점정리절차 1. 심리방식
소장이 접수되면 참여사무관은 소장부본과 함께 소송절차안내서(양식, 별지 1)를 동봉하여 피고에게 송달한다2. 피고가 안내서에 적힌 대로 상세한 답변 서와 함께 진료기록부(번역문 첨부)를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은 이를 소송절 차안내서(양식, 별지1), 준비명령(양식, 별지2)과 함께 원고에게 송달하여 준 비서면과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게 함으로써 쌍방 주장의 공방을 시작한다.
의료소송의 초기에는 명확하게 청구원인 사실을 특정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보통이므로, 쟁점공방의 시기를 제한하지 않고 증거자료의 수집 등 결과를 보아 가면서 쟁점을 정리해 나가는 방향으로 심리를 진행한다.
2. 실무상 유의점 가. 법적 구성문제
환자 쪽인 원고로서는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나 불법행위에 기 한 손해배상청구의 어떤 형태로든지 그 청구원인을 구성할 수 있고, 또한 이를 주위적, 예비적으로 혹은 선택적으로 병합하여 청구할 수도 있다.
그 청구원인을 무엇으로 삼든지, 과실의 주장, 입증책임에는 결과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소멸시효기간,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 등에게 고유한 위자료 청구권이 인정되는지 여부 및 지연손해금의 기산일 등에 있 어서는 양자가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법원으로서는 당사자로 하여금 이를 구분하여 주장, 정리하도록 석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3.
나. 주장, 입증책임문제 (1) 의료과실의 경우
(가) 의의
(i) 진료상 주의의무위반
의료과오소송에서 주장, 입증하여야 할 사항으로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의료과실에 대한 것이다. 의료과오소송에서 문제되는 의료인의 과 실은 통상 일반 불법행위에서와 같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위반, 즉 의료인이 진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요구되 어지는 진료상 주의의무의 위반이다.4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 사에게는 그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위험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최선의 주
2 앞의 실무편람 28쪽 참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위 양식을 일부 수정하여 의료사건에 특 유한 내용을 포함시켜 사용하고 있다.
3 박형준, “의료과오소송의 심리상 문제점”, 서울지방법원 실무논단(1997) 235쪽 참조
4 법원행정처 실무편람 2쪽 참조
의의무가 요구되고, 따라서 의사로서는 환자의 상태에 충분히 주의하고 진료당시의 의학적 지식에 입각하여 그 치료방법의 효과와 부작용 등 모 든 사정을 고려하여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 치료를 실시하여야 하는 것이 다. 그리고 주의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위험성에 대한 결과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에 있다5.
한편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진료채무의 성질은 질병의 치유와 같은 결과를 반드시 달성하여야 할 「결과채무」가 아니라, 환자의 치유 를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현재의 의학수준에 비추 어 필요하고도 적절한 진료조치를 다하여야 할 채무 이른바 「수단채무」
라고 보아야 하므로6, 진료의 결과가 나쁘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바로 의 료상의 과실이 있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진료의 결과가 불 가항력적이라는 사실만으로 의료상의 과실이 없다고 추정하여서도 곤란 할 것이다.
(ii) 판단기준
이러한 주의의무의 판단기준은 「진료당시의 임상의학의 실천에 의한 의료수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7.
의료상의 주의의무에 있어서는 의학이 기준으로 된다. 여기에서 말하 는 의학이란 통상의 의사에게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의학, 즉 이른바 의학상식이다. 그리고 의료과오는 의 학이 환자에게 응용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의 학은 이른바 임상의학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리학적인 엄밀성은 요구되 지 않는다. 그리고 임상의학은 통상의 의사에게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의학이어야 하기 때문에, 예컨대 일부의 대학, 연구소, 병원 등에서만 알려져 있는 의학에는 원칙적으로 의사가 따를 필요는 없다.
사고 당시 학문상의 의학수준 내지 선진적인 치료수준과 실천적, 평균적 인 의료수준과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경우, 의료수준은 후자의 의미로서 작용한다.
한편 의학은 계속하여 발전하는 것이므로, 의사에게는 날마다 발전하 는 의학의 수준을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과실판정의 기준이 되는 의학은 사고발생 당시의 수준에서 본 의학이다.
또한 의사의 주의의무의 기준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의사가 놓여 있는 환경이나 전문과목, 진료당시의 사정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한다. 통 상의 의사라고 하더라도 일반의와 전문의 사이에는 주의의무의 정도에 차이가 있고, 대학병원, 전문병원과 일반개업의 사이에는 주의의무의 판 단기준이 동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긴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개업
5 대법원 1998.2.27. 선고 97다38442 판결, 법원공보 1998상, 872쪽 참조
6 대법원 1993.7.27. 선고 92다15031 판결, 법원공보 1993, 2381쪽 참조
또한 並木 茂,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채무불이행구성과 불법행위구성”, 재판실무대계 17 권(의료과오소송법,1990) 8쪽 참조
7 각주1)의 대법원 98다50586 판결 등 다수
의의 경우에도 사후 예상되는 사태에 대비하여 관계 의료기관과의 연계 를 도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원을 시키는 등의 대응을 생각할 수 있 으므로, 의료수준의 차이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나) 주장, 입증책임과 소송지휘 (i) 주장, 입증책임의 소재
주장, 입증책임의 소재는 의료과오소송의 심리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중요한 지표가 되므로, 소장이 접수된 때로부터 판결선고에 이르기까지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이다.
우리 대법원은 전통적 규범설 또는 법률요건분류설에 따라 의료과오 에 대한 주장,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다고 하고 있다. 의료사건의 특수 성에 비추어 원고 쪽에게 주장 및 입증의 부담을 상당부분 경감시켜 주 고 있기는 하나, 주장, 입증책임 자체가 전환되는 것은 아니므로, 의료사 건에 있어서도 원고 쪽이 전혀 주장하지 않은 피고 쪽의 진료상 과실을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고 쪽이 수술과정상의 잘못을 주 장하고 있을 뿐인데, 법원이 부적절한 약물 투여로 인한 약물부작용이 발생하였음을 피고 쪽의 과실로 인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원고로서는 적어도 진단, 치료, 수술, 경과관찰, 혹은 설명의무, 전원의무 등 어떠한 점에 관하여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명백히 하지 않으면 안 된 다.
원고의 주장이 명백하지 않고 당연히 주장하여야 할 사실을 주장하지 않거나, 제출하여야 할 증거를 제출하지 않거나 하는 경우, 원고에 대하 여 준비명령(양식, 별지3) 또는 석명준비명령을 발하여, 석명권을 행사하 거나 입증을 촉구한다8.
(ii) 피고 쪽의 협력의무
그러나, 주장, 입증책임이 원고 쪽에게 있다는 것은 당사자가 변론에 서 사실을 주장하지 않거나 사실인정이 진위불명에 빠진 경우에 궁극적 으로 그 불이익을 원고 쪽에 돌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는 사실과 증거가 의사 쪽에 편재되어 있어, 원 고 쪽에는 사실과 증거에의 접근이 곤란한 반면 피고 쪽은 그 접근이 용 이하고 사실관계를 쉽게 해명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 더욱이 법원은 소 송절차가 공정하고 신속하며 경제적으로 진행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당사자와 소송관계인은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소송을 수행하여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1조). 따라서 이론상의 주장, 입증책임의 소재에도 불구하 고 원고에게만 주장, 입증을 촉구할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 의 주장과 입증을 피고에게 촉구하는 등 입증책임의 소재에 구애되지 않 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탄력적인 소송지휘가 요청된다.
8 석명권의한계에대하여는대법원 1998.2.27.선고 97다38442 판결참조, 법원공보 1998상, 872쪽